(약가개편 칼바람)①"줄일 건 다 줄여라"…제약사, 자린고비 모드 '돌입'
하반기부터 제네릭 약가 40% 인하 방침…14년 만 약가조정
"절충선 찾을 것" 예상하면서도 연말연초 예산 줄이기 고심
2026-01-14 15:11:48 2026-01-14 15:29:03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오리지널 대비 53.55%였던 제네릭 약가를 40%로 낮추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공식화한 지 약 두 달이 흘렀습니다. 14년 만에 약가를 10%포인트 넘게 낮추면서 제네릭 의존도를 줄이고 신약 개발 동력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담긴 개편안입니다. 제약업계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예산 절감으로 대응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신약 개발 여정보다 당장의 생존을 선택한 꼴입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해 11월28일 제네릭 약가를 오리지널 대비 53.55%에서 40%로 조정하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확정했습니다.
 
새 약가제도는 올 하반기부터 적용될 예정입니다. 최근 제네릭 약가 조정은 지난 2012년입니다. 정부가 14년 만의 제네릭 약가 대수술에 나선 배경은 지나치게 높은 제네릭 비중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2만1962개의 급여의약품 등재 품목 중 오리지널 의약품은 2474개로 전체의 11.3%에 불과했습니다. 제네릭이 전체 급여의약품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셈입니다.
 
정부, 바이오시밀러 거쳐 신약개발 활성화 기대
 
새로운 약가제도 개편안이 나온 지 약 두 달이 흐른 지난 12일 주무부처 수장인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우리나라는 제네릭 중심에서 바이오시밀러를 거쳐 혁신신약 개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생중계된 자리에서 제네릭 대신 바이오시밀러와 신약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 장관의 발언은 약가제도 개편안에 힘을 싣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제네릭 대신 바이오시밀러와 신약을 우대하겠다는 이재명정부 방침은 곳곳에서 읽힙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9월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서 바이오시밀러 처방이 늘어나야 한다는 패널 제안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고,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이 대통령 의중이 담긴 세계 최단기간 의약품 허가 심사 구상의 중심을 바이오시밀러에 맞추기도 했습니다.
 
제약업계 화들짝…"제네릭은 산업 뿌리"
 
산업계는 저지노선을 구축했습니다. 제네릭 약가가 40%로 떨어지면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되고, 이는 곧바로 연구개발 투자 위축을 야기해 신약 개발 동력을 잃는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5개 단체가 모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작년 말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며 "산업의 근간을 흔들어 국민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또 다른 인사는 제네릭이 산업의 뿌리라며 약가 인하가 불러올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제네릭 약가 인하로 인한 산업계 피해가 거짓 주장은 아닙니다.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정책으로 제약사 매출은 최대 절반 가까이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연구개발 예산 삭감, 임상시험 중단, 구조조정 등의 여파도 실재했습니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2월22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관 대강당에서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스토마토)
 
체질 개선 대신 긴축경영…"14년 동안 뭐했나" 자아성찰도
 
새로운 약가제도 개편안 시행을 약 6개월 앞둔 제약사들은 부랴부랴 활로 모색에 나섰습니다. 제네릭 매출 비중이 큰 제약사들이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일제히 새로운 예산 집행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한 겁니다.
 
대형 제약사의 한 임원은 "제약사들은 전통적으로 연말에 일제히 휴식에 돌입하는데 올해는 새해를 며칠 앞두고 새로운 예산안을 작성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제네릭 약가가 내려가면 매출도 떨어지고 수익성이 악화할 게 뻔하니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연초부터 모든 부서가 줄일 수 있는 지출이 얼마나 되는지 항목별로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약업계가 똘똘 뭉쳐 새로운 약가제도 개편안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냉철한 자아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제네릭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가 10여년 전에도 있었는데 여전히 한국 제약업계는 지속 가능한 기업 경영을 위한 도전에 서툴다는 지적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산업 부흥을 위해 제네릭 약가를 인하하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산업계와 충분한 소통 없이 약가제도를 개편하겠다는 점에선 아쉬움을 느낀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2012년 일괄 약가 인하로 후폭풍이 있었고, 이번에도 제네릭 약가 인하로 여러 부작용은 불가피하다"며 "뒤집어 생각하면 14년 동안 기업 체질을 바꿀 시간이 있었는데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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