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축출을 지지하는 시민을 체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거리에 투입된 준군사조직 '콜렉티보' 조직원.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기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압송하는 데 성공한 뒤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안전하고 적절하며 현명한 (정권) 이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를 공격 이유 중 하나가 석유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베네수엘라에 "아주 규모가 큰 미국의 석유 회사들이 들어가서 수십억 달러를 들여 심각하게 파괴된 석유 인프라를 복구할 것"이라며 "(그 회사들은) 그 나라를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6일에는 베네수엘라 원유를 미국이 무기한 대리 판매하고 그 수익금 사용처도 미국이 결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우선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제재에 막혀 팔지 못하고 있던 3000만~5000만배럴 상당의 원유를 인수했으며, 이를 시장에 판매한 뒤 수익을 양국에 배분하겠다고도 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매장량 1위 국가다. 전 세계 매장량의 17%에 달하는 3030억배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공언한 대로 베네수엘라를 미국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일까?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는 마두로 대통령만 사라졌을 뿐 기존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부통령이었던 델시 로드리게스가 임시 대통령을 맡았고, 치안을 맡고 있는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과 군사력을 장악한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도 그대로 직을 유지하면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차베스주의자들로 구성돼 무장·동원·감시를 수행하면서 마두로 체제에서 비공식 치안 업무를 맡아온 콜렉티보 민병대가 무장한 채 검문소를 설치하고 차량을 수색해 미 시민권이나 미국 지지 증거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 10일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대사관은 자국민들에게 출국을 권고하기까지 했다. 물리력을 갖고 있는 군과 민병대가 여전히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마두로가 미국으로 압송된 직후 3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군 작전에 협력하거나 이를 지지·조장한 인물에 대해 수색·체포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며, 마두로 보호에 실패한 대통령 경호실장도 경질했다.
마두로 잡혀갔어도 마두로 체제는 유지…미국, 자국민에게 출국 권고
물론 로드리게의 임시 대통령 취임은 미국의 '승인'하에 가능한 것이지만, 어정쩡한 줄타기 모양새다. 로드리게스가 미국의 공격 직후 부통령으로서 미국을 강하게 비판하며 마두로 부부의 석방을 요구하자 트럼프는 "처신을 똑바로 하지 않을 경우 2차 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로드리게스는 "미국과 상호 존중하며 균형 있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머리를 숙였으나, 임시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에는 "마두로가 여전히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대통령"이라면서 "미국의 작전은 불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석유로 경제를 지탱해온 베네수엘라로서도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로드리게스는 부통령 시절 석유장관을 겸임하면서 경제 운영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은 35회 정도의 대외 군사행동을 벌였지만,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처럼 지상군 파견 없이 수장만 잡아 온 것은 처음이다. 이는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실패한 것에 대한 반면교사다. 미국이 대규모 지상군을 파견해 한반도 4.5배 면적인 베네수엘라를 전면적으로 점령하려 한다면, 전면전이나 내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 국민의 반발은 물론이고 마가(MAGA) 진영 내부에서도 베트남 등에서의 악몽을 재현할 것이냐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4일자 '미국의 베네수엘라 운영 계획이 혼란에 휩싸였다'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이제 베네수엘라를 '운영'할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한 지 하루가 지나 카라카스의 혼란이 가라앉으면서, 앞으로 몇 주, 몇 달 동안 워싱턴이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통치할지는 불확실하고 여전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면서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정책을 대표하는 인물인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렁에 빠지게 했던 것과 같은 침공과 국가 재건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이 어떻게 베네수엘라를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거듭 받자 발끈했다"고 전했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코리나 마차도 같은 야권 인사가 아니라 마두로 체제의 2인자인 로드리게스의 대통령직 승계를 수용한 것도, 사실 미국으로서도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는 선택이라는 반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석유 회사 임원들과 만나 베네수엘라 석유 인프라 재건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뉴시스)
액손모빌 CEO, 투자 촉구하는 트럼프 면전에서 "투자 부적합 상황"
트럼프가 침이 마르게 강조한 석유는 어떤가. 석유 거래는 통제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밝지 않아 보인다. 지난 9일 트럼프는 엑손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쉘 등 대형 국제 석유회사 경영진과 한 간담회에서, 이들에게 1000억달러(약 147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촉구하면서 상당한 수익을 안겨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기업들은 불안정한 중남미 국가에서의 시추와 관련된 극도로 어려운 경제 상황과 안보 문제를 인지하고 있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고 당시 간담회 상황을 전했다. 특히 미국 1위 석유 회사인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CEO)인 대런 우즈는 현재 베네수엘라 상황이 회사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섣불리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현재 베네수엘라의 법률 및 상업 구조와 체계를 살펴보면 투자하기에 부적합한 환경이며, 상업 체계와 법률 시스템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면전에서 반기를 든 셈이다.
<로이터>통신도 이날 간담회 분위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에너지 대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에 1000억달러를 투자해, 현재 하루 90만배럴인 생산량을 대폭 늘리도록 하려는 야심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 석유는 초중질유 비중이 높아, 채굴과 정제 비용이 많이 든다. 중동의 경질유에 비해 경제성이 낮다는 얘기다. 더욱이 베네수엘라 석유·정제 설비는 마두로 전임 차베스 집권 시절 미국 제재로 심하게 노후화돼 있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국제 석유회사들과 간담회를 해야만 하고, 그럼에도 이 회사들 대부분이 투자에 반색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 공격이 벌어진 3일자 사설에서 "지난 세기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형편없는 정권이라도 전복시키려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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