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누가 ‘디지털 영토’를 지배하는가”
『디지털 지도 전쟁』 펴낸 김인현 대표
지도는 미래 도시의 ‘운영체제(OS)’
2026-02-06 10:57:18 2026-02-06 10:57:18
우리가 매일 스마트폰으로 들여다보는 지도는 과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일까요? 도시는 물리적인 콘크리트와 도로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대의 도시는 데이터 위에 흐르고, 그 데이터의 핵심에는 ‘지도’가 있습니다.
 
『디지털 지도 전쟁』을 펴낸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지도 데이터 반출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와의 대화는 단순한 IT 기술 이야기를 넘어, 누가 우리의 도시와 공간을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지도를 가진 자가 지도자(Leader)다”라며 데이터 주권을 강조하는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 (사진=한국공간정보통신)
 
2007년, 전쟁의 서막과 ‘데이터 주권’
 
김 대표는 책 제목에 왜 살벌한 ‘전쟁’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묻자,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지도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중립적인 적이 없습니다. 제국주의 시대, 지도는 식민지를 통치하고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지금은 총칼 대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입니다.”
 
그의 말은 큽니다. 우리가 도로공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결정이 보행자의 권리를 위한 정치적 행위이듯, 디지털 지도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추느냐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 ‘권력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가 이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한 건 2007년,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한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요구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기술 발전’과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명분 아래 데이터 개방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땅은 빼앗겨도 되찾을 수 있지만, 데이터는 한번 넘어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공간 정보가 해외 서버에 종속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 도시에 대한 ‘선택권’을 잃게 됩니다.” 이는 도시의 공공성과도 연결됩니다. 만약 특정 글로벌기업의 지도가 도시의 표준이 된다면, 그 알고리즘에 선택받지 못한 소상공인이나 공공시설은 디지털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 지도는 미래의 ‘좌표’다
 
김 대표는 인터뷰에서 “지도를 가진 자가 지도자(Leader)다”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AI와 자율주행, 스마트시티는 모두 ‘좌표’ 위에서 작동합니다. 미래의 물류, 국방, 행정까지 모든 것이 지도라는 인프라 위에 얹힙니다. 이 인프라를 남의 손에 맡겨두고 우리가 진정한 스마트시티를 설계할 수 있을까요?”
 
그의 경고는 바르셀로나가 천명했던 ‘디지털 주권(Digital Sovereignty)’ 선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르셀로나는 스마트시티를 추진하며 “데이터는 공공재이자 시민의 소유”라고 규정했습니다. 거대 기술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도시가 종속되지 않도록, 데이터 통제권을 시 정부와 시민이 쥐어야 한다는 철학입니다.
 
김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지도 주권’이라는 데이터 주권을 잃는다면, 우리의 도시는 시민의 필요가 아닌, 플랫폼 기업의 이익과 효율성에 맞춰 재편될 위험이 있습니다. 김 대표가 20년간 외쳐온 ‘지도 전쟁’은 결국 우리 도시의 운영체제(OS)를 누가 쥐느냐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2월 11일 발행을 앞두고 있는 <디지털 지도 전쟁> (사진=리코멘트)
 
비판을 넘어선 ‘기록’의 힘
 
김 대표는 이 책을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조를 남기기 위한 기록”이라고 말합니다. 지도 데이터 반출 논란 때마다 반복되었던 ‘안보 논리 대 산업 논리’의 이분법을 넘어,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정책을 결정해왔는지 복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선택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찬반을 떠나 이 선택이 10년, 20년 뒤 우리 후손에게 어떤 ‘디지털 영토’를 물려주게 될지 알면서 결정해야 합니다”라는 그의 말은 우리 세대의 판단이나 결정이 미래 세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디지털 지도 전쟁』은 단순한 기술 비평서가 아닙니다. 이 책은 우리 삶의 터전인 도시와 공간이 누구의 소유이어야 하는지 묻는, 21세기형 공간 철학서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지도는 단순히 길 안내의 기초자료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세계 그 자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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