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면전'…전 세계 '공급망 교란' 가시화
호르무즈 병목에 에너지·식량·반도체 연쇄 타격 현실화
미 국민 67% "휘발윳값 더 못 낸다"…경기침체 가시화
2026-03-23 15:28:24 2026-03-23 15:58:55
[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미국과 이란이 에너지 인프라를 정면으로 겨냥한 '강대강' 충돌에 돌입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새로운 충격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단기적 충돌로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우세했지만,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교란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미국의 전략적 메시지 혼선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 무력 충돌은 오히려 격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향해 '초토화'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요구했고, 이란은 "발전소 공격 시 해협을 완전히 폐쇄하고 재건될 때까지 열지 않겠다"고 맞서면서 에너지 인프라를 둘러싼 정면충돌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려 손짓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베선트 "긴장을 고조시켜야…유가 상승, 미국인 감당 수준"
 
22일(현지시간) 베선트 장관은 <NBC>에 출연해 '48시간 내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지 않으면 이란 발전소를 타격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때로는 긴장 완화를 위해 긴장을 고조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란 전쟁의 성과를 감안하면 일시적인 유가 상승은 미국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군사적 긴장과 정책 메시지가 엇갈리는 가운데 에너지 시장은 빠르게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로, 사실상 봉쇄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공급 충격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현재 일부 선박 통항이 이어지고 있지만 보험과 안전 문제로 운항이 크게 위축되면서 '실질 봉쇄'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가격 신호는 뚜렷합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유럽 천연가스 가격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단순한 단기 상승을 넘어 구조적 공급 불안이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항공·물류·화학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 전반에서 비용 압박이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입니다.
 
기업들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스콧 커비 유나이티드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유가가 배럴당 175달러까지 상승하고, 2027년까지 100달러 이상을 유지하는 상황까지 가정해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리스크 관리를 넘어 장기 고유가 체제 가능성을 실제 경영 변수로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LNG·비료·헬륨까지 '공급망 전방위' 흔들림
 
에너지 충격은 실물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습니다. 화학, 플라스틱,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서도 원재료 공급 차질 우려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헬륨 등 에너지 부산물 공급 감소는 첨단 제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디언은 "석유산업의 주요 부산물인 비료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전 세계 농업 생산비가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식품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소시에테제네랄은 "호르무즈 해협이 수개월간 사실상 막힌 상태로 남을 경우, 에너지를 넘어 식품과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교란이 심화되면서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충격이 결합한 수준의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주요 중앙은행들도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동시에 성장률을 둔화시키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유가가 배럴당 150~17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클레이스는 2026년 유가가 평균 배럴당 100달러를 기록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올해 글로벌 성장률은 기존 전망보다 0.2%포인트 낮은 2.8%를 기록하고, 인플레이션은 0.7%포인트 높은 3.8%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프리포트의 전략비축유(SPR) 시설. 원유 파이프와 설비가 미로처럼 얽혀 있는 모습이 보이고, 뒤편으로 미국 국기와 텍사스 주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미국 내 여론도 흔들…"전쟁, 경제에 악영향" 인식 확산
 
미국 내 여론도 경제 부담을 중심으로 빠르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날 <CBS>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발표한 여론조사(3월 17~20일, 미국 성인 3335명, 표본오차 ±2.1%포인트)에 따르면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60%로, 이달 초(56%)보다 4%포인트 상승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분쟁의 목표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68%로, 이달 초(62%)보다 늘었습니다. 응답자의 57%는 "전쟁이 미국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43%에 그쳤습니다.
 
특히 이번 전쟁이 휘발유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경제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단기적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는 응답도 증가했습니다. '전쟁 기간 더 높은 휘발유 가격을 감수할 의향이 없다'는 응답은 67%에 달했습니다. <CBS>는 "휘발유 가격 상승이 미국 경제 전반에 대한 비관론을 키우고 있고, 단기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 같은 불확실성은 행정부가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과 맞물려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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