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가족이 먼저 왔다)③'사실혼 아니다'에서 '생활공동체'로…동성혼 소송 20년의 변화
'용인 불가' 판결 후 20년…단순 동거인에서 '생활공동체'로 인식 '전환'
지역 법원도 문턱 낮아져…울산·부산·대구서도 혼인평등 소송 첫 심문
2026-06-11 16:14:23 2026-06-11 16:53:45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동성 간에 '사실혼 유사의 동거 관계'(사실혼으로 인정되지 않는 단순 동거)를 유지했더라도 이를 부부로서의 공동생활을 영위할 의사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4년 법원은 동성 부부가 제기한 재산분할·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법원은 동성 부부를 "사실혼과 유사한 생활공동체"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 '동거 관계'에서 '생활공동체'로 인식을 전환한 겁니다. 물론 법원은 여전히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동성 부부의 관계를 사회제도와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법원 "이성 간 사실혼과 차이 없어…동성 커플 평등권 보호해야"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재판장 민소영 부장판사)는 A씨가 동성 배우자와 관계를 파탄 낸 제3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쟁점은 '법률혼 관계가 아닌 동성 부부를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동성 부부 관계 자체를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였습니다. 재판부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통한 생활공동체가 형성돼 이성 간의 사실혼 관계와 실질적인 차이가 없는 경우"라면 "관계의 파탄을 초래한 제3자의 손해배상을 일절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사실혼과 유사한 수준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성 커플의 행복추구권 내지 평등권을 외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성 간에 형성된 사실혼 유사 생활공동체 역시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으로 보호돼야 한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뉴시스)
 
'사회질서상 용인될 수 없다'에서 '차별 금지'로…20년의 발자취
 
법원의 이런 변화는 20년 넘는 치열한 법정 투쟁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판결문에 '동성 배우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4년입니다. 당시 20여년간 같이 살다가 결별한 동성 부부가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청구했으나, 인천지방법원은 두 사람의 관계를 "사회 관념상 가족 질서적인 면에서도 용인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입법이나 다른 법적인 구제 수단에 의한 해결은 별론으로 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입법부의 과제로 공을 넘겼습니다. 
 
2013년 영화감독 김조광수씨가 법원의 혼인신고 불수리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법원은 이를 각하한 바 있습니다. 2016년 서울서부지법은 "'혼인'은 남녀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풍속적으로 정당시되는 결합"이라며 "이를 넘어 '당사자의 성별을 불문하고 두 사람의 애정을 바탕으로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으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판결이 전향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2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24년 소성욱씨가 동성 배우자로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했습니다.
 
혼인 평등 소송 대구 지역 원고인 임아현·최진아씨. (사진=최진아) 
 
'혼인평등 소송' 원고 측 "양성평등 조항은 '동성혼 금지법' 아냐"
 
최근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동성 부부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10월, 11쌍의 동성 부부가 수도권 6개 법원에 혼인 평등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난해 4월, 혼인 평등 소송에 참여한 대구 지역 원고 임아현씨와 최진아씨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법원에 제출한 '혼인신청 불수리에 대한 불복신청서'에서 헌법 제36조 1항의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규정이 동성혼을 금지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가부장적 혼인제도 아래에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조항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보장하고 혼인의 자기결정권, 혼인을 통한 개인의 자율적 인격 실현을 보장하고 상호 동등한 결합체로서 혼인을 보장하는 것이 입법 목적에 부합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동성 부부를 대하는 법원의 태도도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별도의 심문기일 없이 각하했지만, 최근엔 동성 부부의 삶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임씨는 "처음 수도권에서 소송을 제기했을 때는 서울 지역 법원에서는 심문기일조차 잡히지 않았다"며 "그런데 대구가정법원에서 저희 소장이 접수되자마자 심문기일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냥 그 자체로 너무 기쁘고 신났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의 소송은 오는 25일 대구가정법원에서 첫 심문기일이 열립니다. 이들은 법정에 출석하면 평범한 일상 가운데 주위에서도 부부라고 인정받고 있는 경험을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최씨는 "저희 부모님도 저와 아현이 사이를 가족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주위 친구들도 다 그렇게 인정했다"며 "법적인 문제나 제도가 따라오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이미 가족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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