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전기 국가’ 비전을 함께 제시했다. 반도체·인공지능(AI)데이터센터·피지컬AI와 같은 첨단산업에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이자 핵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2035년까지 총 18.4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6.3GW의 반도체 팹 4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사업에 필요한 전력 설비량만 24.7GW로 최신 대형 원전(1.4GW) 18기에 해당하는 규모로 기존 전력 수요 전망을 크게 넘어선다. 정부는 올해 수립 예정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전력 수요 전망과 발전원 구성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4월 공개된 12차 전기본(안)의 최대 전력 수요 잠정치는 2040년 131.8~138.2GW였다.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 전력 수요, 전기화를 고려해 11차 전기본의 2038년(129.3GW)보다 2.5~8.9GW 이상으로 전망했었다. 그런데 이번 발표로 그보다 20GW 이상 많은 신규 전력 수요를 추가로 반영하고 발전설비 확대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의 적절성 여부와 함께 어떤 발전원으로 전력을 공급하느냐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과 신규 원자력발전(원전) 부지 지정 및 계속 운전을 추진 중인 원전 9기를 활용하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가 이후 추가 원전과 LNG 발전 확대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국제사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막대한 전력 수요를 기존처럼 원전과 LNG, 석탄 발전으로 충당하면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녹색전환연구소와 참여연대 환경정의의 연구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가 당장 착공에 들어가 2029년 8.4GW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2035년까지 추가로 누적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8500만톤으로 추산됐다. 연간 배출량의 약 12% 규모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누적 설비용량 100GW 목표를 조기 달성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목표를 이루려면 2026년부터 매년 13GW 정도의 신규 설비 보급이 필요하지만, 현재 연간 보급 규모는 약 4GW 수준이다.
2001년 이후 다섯 차례 수립된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발전원 간 불균형과 전력망 인프라 부족 등 구조적 한계는 누적됐다. 최근 몇 년간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2022년 1.3조원에서 2025년 0.9조원으로 34% 급감했으며, 신규 보급 흐름 역시 정체 국면이다.
반도체와 AI데이터센터, 피지컬AI를 국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화려한 계획의 이면에는 반도체 업황의 불확실성, ‘AI 거품론’의 부상과 같은 글로벌 리스크가 감춰져 있다. 최근 국제기구,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들은 AI 투자 붐이 꺼질 경우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금융시장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반대로 AI가 성공적으로 확산하더라도 일자리를 대체하게 돼 실업률이 오르고 소비지출이 위축돼 결국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술 패러다임 변화 속도가 빠르고 시장 변동성이 극심한 시기에 정부가 특정 산업에 막대한 국가 자원을 ‘올인’하면서 위험을 키우는 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절실한 상황에서 전력 소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산업 구조를 국가 주도로 확장하는 것에 대해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자, 기후 부정의 선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가 산업의 전기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개발은 결국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약속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정부가 기술 패권 경쟁에 매몰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진정한 ‘대도약’은 반도체와 AI 산업의 외형적 팽창이 아니라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산업 전환의 길 안에서 가능하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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