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디지털자산 전문 매체 <디지털애셋>에서 작성했습니다.
[디지털애셋 박상혁 기자] 국내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NXT) 장전거래에서 체결된 SK하이닉스 주식 단 한 주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 한 주의 거래가 글로벌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SK하이닉스 무기한선물 8000만달러(약 1150억원)어치 연쇄 청산으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무기한선물이란 만기가 없고 24시간 고배율 레버리지를 적용해 거래할 수 있는 가상자산(디지털자산)시장 만의 독특한 파생상품입니다.
지난 7월 28일 오전 8시 1분(한국시간) 글로벌 탈중앙화거래소(DEX) 하이퍼리퀴드에서 SK하이닉스 가격을 추종하는 무기한선물 SKHYNIX 가격이 1127.9달러(약 162만2480원)에서 917.25달러(약 132만원)로 18.7% 급락했습니다. 가격은 약 2분 만에 1100달러(약 158만원) 수준으로 회복했지만, 이미 롱포지션 상당수가 강제청산된 뒤였습니다.
SK하이닉스와 하이퍼리퀴드의 결합을 형상화했다.(이미지=디지털애셋)
트레이드xyz “청산 피해 보상”
온체인 분석업체 헙지는 이번 폭락 사태로 8000만달러 이상의 선물 포지션이 연쇄 청산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특히 블록체인 데이터업체 알리움은 청산이 일어난 지 2분 만에 900명 이상의 이용자들이 롱포지션 5740만달러(약 826억원)를 강제청산 당했고 실현손실은 1740만달러(약 251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이퍼리퀴드 기반 SK하이닉스 무기한선물 운영사인 트레이드xyz는 7월 29일 X에 “여러 독립 데이터 제공업체가 NXT에서 체결된 가격을 전달했고, 외부가격을 추종하도록 설계된 오라클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라클은 블록체인 밖에 있는 데이터를 왜곡하지 않고 블록체인 안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뜻합니다. 문제는 정상 작동한 오라클이 대표성이 거의 없는 단일 체결까지 정상적인 시장가격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이에 트레이드xyz는 “외부 거래소 가격 추종 의존도를 재검토하고, 자체 주문장에서 형성되는 가격 신호도 가격 산정에 더 크게 반영하겠다”라며 “이번 사례에 한해 강제청산으로 손해를 입은 이용자들에게 보상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27만원짜리 1주 파문…왜?
사건의 출발점은 7월 28일 오전 8시 NXT 장전거래였습니다. 전날 종가가 181만6000원이었던 SK하이닉스 한 주가 장전거래 개장 직후 하한가인 127만2000원에 체결된 것입니다.
NXT 장전거래는 매수·매도 가격이 맞으면 즉시 거래가 성립하는 접속매매 방식입니다. 한국거래소 정규장 개장 전처럼 일정 시간 주문을 모은 뒤 하나의 시초가로 체결하는 동시호가 방식이 아닙니다. 개장 직후 호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극소량 주문도 마지막 체결가를 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물론 국내 현물시장에서는 곧바로 매수 주문이 들어오면서 가격이 170만원대로 회복됐습니다. 현물시장만 놓고 보면 순간적인 가격 왜곡으로 끝난 셈이지만, 24시간 거래되는 글로벌 무기한선물 시장에서는 이 가격이 오라클을 거쳐 청산 기준가격인 마크가격에 반영된 것입니다. 마크가격이란 거래소가 오라클 가격과 주문장 가격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 강제청산·미실현손익 계산용 기준가격입니다. 즉, 이번 사태는 ‘NXT 하한가 체결→현물 가격 하락→오라클 가격 하락→마크가격 하락→롱포지션 강제청산’ 순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마크가격이 투자자의 청산가격 아래로 내려가면 시스템은 거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포지션을 매도합니다. 이 매도 물량이 유동성이 얕은 하이퍼리퀴드 내부 주문장을 추가로 끌어내리면, 내부 호가와 최근 체결가를 반영하는 가격 요소도 하락합니다. 최초의 외부가격 충격이 내부 청산 매도로 증폭되고 다시 추가 청산을 부르는 악순환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주가가 2분 뒤 정상화되었더라도, 이미 청산된 포지션은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발생한 가격 왜곡이 대규모 청산으로 이어진 이유입니다.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에서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무기한선물 자산이 지난달 28일(한국시간) 장중 약 18% 급락한 뒤 2분 만에 반등하는 급격한 변동성을 보였다.(이미지=하이퍼리퀴드)
무기한선물 법적 지위 논란
이번 사태는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무기한선물 시장의 규제 문제와도 맞물려 주목받고 있습니다. 무기한선물은 파생상품이어서 투자자가 직접 주식을 보유하지 않아도 24시간 가격 상승이나 하락에 베팅할 수 있지만, 자동청산과 외부 오라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가격 입력에 문제가 생기면 손실이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상대로 예측시장 플랫폼 칼시와 가상자산(디지털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무기한선물 허용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CME는 만기가 없는 계약은 일반 선물이 아니라 도드-프랭크법상 스왑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소송은 이번에 사태가 불거진 하이퍼리퀴드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기한선물을 기존 선물과 같은 법적 틀에서 다룰 수 있는지를 다툰다는 점에서 사실상 하이퍼리퀴드도 겨냥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NXT SK하이닉스 현물 가격이 글로벌 탈중앙화거래소의 파생상품에 활용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양쪽 시장을 동시에 감시하고 사고를 조정하는 단일 규제기관은 없습니다. 현물시장 주문의 고의성 여부, 해외 오라클 설계, 파생상품 레버리지, 보상 문제를 각각 다른 기관 및 사업자가 다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별도 검증 등 제한 장치 필요”
이번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선 먼저 NXT 개장 직후 가격 형성 방식이 개선돼야 합니다. NXT는 오는 9월 14일부터 기준가 대비 가격이 10% 이상 변동하면 거래를 2분 간 단일가매매로 전환하는 정적 변동성완화장치(VI)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다수의 주문을 일정 시간 모은 뒤 하나의 가격으로 체결하면 단 한 주가 극단적인 시초가를 만드는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현물시장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모종우 언디파인드랩스 공동창업자는 <디지털애셋>에 “오라클에는 최소 거래수량과 최소 거래대금 조건을 적용하고, 개장 직후에는 일정 시간의 거래량가중평균가격이나 여러 시장 가격의 중앙값을 사용해야 한다"며 “직전 정상가격에서 일정 비율 이상 벗어난 단일 체결은 즉시 반영하지 않고 별도 검증시간을 두는 가격 제한 장치도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송창석 블롭 웹3 디렉터는 “무기한선물 운영사는 마크가격의 단시간 변동폭을 제한하고 외부가격과 내부 주문장 가격의 괴리가 커질 경우 청산을 잠시 중단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시장 유동성에 따라 레버리지와 계정별 포지션 한도를 낮추고, 이상가격이 확인됐을 때는 강제청산보다 먼저 거래중단이나 내부가격 전환이 작동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박상혁 기자 seminomad@digitalasset.works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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