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폐렴에 걸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뉴욕 증시가 올라도 코스피는 안 오르지만 뉴욕 증시가 떨어지면 코스피는 더 크게 떨어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코스피 랠리는 기존 주식시장의 통념을 완전히 뒤바꿔놨습니다. 뉴욕·일본·홍콩 등 글로벌 증시 투자자들이 일제히 한국 시장의 등락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투톱이 글로벌 기술주들의 흐름을 주도하는 양상입니다. 물론 반도체주 쏠림에 따른 극심한 변동성은 숙제입니다. <뉴스토마토>는 글로벌 반도체 풍향계가 된 코스피가 그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앞날을 짚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7월 한 달간 코스피 지수는 22.19% 하락했습니다. 7월의 마지막 거래일인 31일 18% 가까이 급등하면서 월간 낙폭을 상당 부분 줄였으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최악의 한 달을 보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올해 초 '꿈의 지수'로 여겨졌던 5000포인트를 돌파한 코스피는 중동 전쟁 우려가 짙었던 3월 19.08% 뒷걸음질 쳤으나, 4월과 5월 각각 30.61%, 28.45%의 역대급 반등을 이뤄냈습니다. 변동성이 심해지기 시작한 6월에도 9000포인트를 넘어서는 등 기록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7월 한 달간 큰 폭의 조정을 겪었지만 연초 대비 상승률은 56.51%로 주요국 증시 중 여전히 상위권에 랭크돼 있습니다.
미국의 기술주 중심으로 구성된 나스닥 지수는 코스피와 유사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특히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심의 나스닥100 지수의 연계성은 더욱 높았습니다. 지난 7월 대형주 중심의 다우존스 지수가 0.32% 올랐던 것과 달리 나스닥100 지수는 6.61% 하락한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월간 낙폭으로는 전쟁 위기감이 고조됐던 지난 3월(-4.89%)을 앞섰고, 빅테크 조정이 과하게 나타났던 2025년 3월(-7.69%) 이후 가장 컸습니다. 코스피가 기록적 상승세를 나타냈던 4월과 5월에는 각각 15.64%, 10.49%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연초 대비 상승률은 11.98%를 기록 중입니다.
주요 30개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도 코스피 흐름에 동조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SOX는 7월 한 달간 20.61% 하락했습니다. 지난 4월부터 세 달 연속 두 자릿수대의 강한 상승세를 보인 후 맞은 조정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 같은 한국 증시와 미국 기술주와의 동조화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코스피와 나스닥100 지수의 60일 상관계수는 0.46을 기록했습니다. 최근 5년 평균치인 0.16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높은 수준인데요. 한국 증시가 하락할 때 나스닥100 지수가 반응하는 민감도는 1990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CNBC가 인용한 리서치업체 레일리언트의 자료에서는 코스피 지수와 미국 나스닥100 지수의 최근 60일 상관계수가 약 0.50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이반 파인세스 티그리스파이낸셜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한국은 이제 나스닥과 필라델피아 반도제지수가 속한 동일한 변동성 생태계의 일부가 됐다"고 평가합니다.
코스피 시가총액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서버용 D램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 확대가 양국 증시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가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한국의 투자심리에 기반한 거래가 전 세계 AI 관련 주식 시장 흐름을 24시간 내내 좌우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증시가 미국 증시 개장에 앞서 글로벌 AI 투자심리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뉴욕장 마감 이후 나온 AI 관련 소식에 먼저 반응하면서 미국 기술주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이란 공습 등의 대외 변수에 국내 증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글로벌 투자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파인세스 CIO는 "한국 증시와 주요 반도체주가 미국 AI·반도체 시장의 위험을 미리 보여주는 장전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은 더 이상 변방의 신흥시장으로 볼 수 없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높은 변동성은 지표 역할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UBS는 "레버리지 거래 등으로 변동성이 커진 시장이 투자심리를 주도하면 주가가 기업의 펀더멘털과 괴리될 수 있어 투자 판단이 어려워 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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