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폭염이 길어지면서 산업현장에서의 온열질환 위험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15일부터 7월26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399명으로, 이 가운데 8명이 숨졌습니다. 특히 전체 온열질환자의 26.2%는 산업현장에서 나왔습니다.
그간 폭염 속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지 않은 현장 관리자에게 주로 책임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작업중지 절차와 안전보건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원청 측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오전 광주 북구 옛 중흥2동 행정복지센터 철거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물을 마시며 더위를 쫓고 있다. (사진=뉴시스)
울산지법 형사3단독 김주옥 부장판사는 2018년 7월 도시계획도로 공사 현장에서 배수로 청소 작업 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숨진 60대 노동자 사건에 대해, 2019년 11월 현장소장과 건설회사에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현장소장이 폭염경보 속에서도 휴식시간을 적절히 배분하지 않고 소금·음료 등을 갖추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기온은 35도를 넘었습니다.
2022년 7월 대전의 한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선 50대 하청노동자가 땡볕 아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가 열사병으로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일 최고 기온은 33.5도였습니다. 노동자는 오전부터 지붕이 없는 건물 최상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가 낮 12시쯤 쓰러졌습니다.
이에 대해 대전지법 형사12단독 이재민 부장판사는 현장소장(상무이사)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대전지법은 한발 더 나아가 원청 건설사 대표이사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 처했습니다.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아울러 원청 법인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모두 인정돼 벌금 8000만원이, 하청 법인에겐 벌금 600만원이 선고됐습니다. 원청 법인에 내려진 벌금은 하청 법인의 약 13배에 달합니다.
재판부는 "(원청 대표이사가) 옥외 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체계 미비 때문에 원청과 하청업체의 현장 책임자들이 즉시 작업을 중단하거나,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등의 대응 조치를 할 수 없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급박한 위험이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단하고 노동자를 대피시키는 내용의 대응 매뉴얼도 없었고, 원청의 안전보건 대응 체계 미비가 현장의 보호 조치 실패로 이어져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본 겁니다.
최종연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는 "대전지법의 판결은 하청업체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는 문제로만 끝내지 않았다"면서 "현장을 관리하는 원청이 온열질환 예방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책임도 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했습니다.
신하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도 "폭염이 갈수록 심해지는 만큼, 온열질환 예방 조치와 안전보건 관리 체계가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따지는 문제도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지난해 7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체감온도 31도 이상에서 장시간 일하는 경우를 폭염 작업으로 정의했습니다.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이면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 쉬게 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작성·보관되는 체감온도 측정 기록과 휴식일지는 향후 온열질환 관련 형사재판에서 사업주의 예방 조치 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증거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신하나 변호사는 "휴식 일지를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류를 만들어놓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노동자 진술이나 현장 영상 등을 통해 실제로 휴식이 이뤄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