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등 주요 항로의 운항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산유국이 직접 선박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원유·가스 수출을 위해 운송망을 직접 확보하는 움직임으로, 중고선가 상승은 물론 신조선 발주와 장기용선 수요를 자극할 전망입니다. 국내 조선·해운업계에도 새 기회가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아드녹의 VLCC ‘아르자나호’. (사진=아드녹)
10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에너지 기업 아드녹(ADNOC)의 해운 자회사 아드녹L&S는 최근 약 13억달러를 투입해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6척과 초대형 가스운반선(VLGC) 5척 등 11척을 확보했습니다. VLCC 보유 선대는 기존 8척에서 14척으로 확대됐습니다.
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은 매입가격입니다. 아드녹L&S는 2017년 건조된 VLCC 2척을 각각 1억3500만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선박 가치 평가기관 베슬스밸류의 평가액인 약 1억3300만달러를 웃도는 수준입니다. 2013년 건조 VLCC도 약 1억2000만달러에 사들여 시장평가액 약 1억600만달러보다 높았습니다. VLGC 역시 시장가를 웃도는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아드녹L&S가 확보한 중고 VLGC는 척당 1억500만~1억1000만달러 수준으로, 당시 시장평가액인 약 8690만달러보다 높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산유국이 비싼 가격에 선박을 확보하는 배경은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운항 차질이 단순한 운송비 상승을 넘어 원유·가스 수출 자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박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원유 선적 일정이 지연돼 생산·저장시설에 재고가 쌓입니다. 이에 필요한 선복을 해운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확보해 운송망 안정성을 높이려는 조치입니다.
아드녹L&S는 선박 매입뿐 아니라 용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 해운사 장금상선으로부터 원유운반선 약 25척을 빌려 호르무즈 해협 안쪽 생산시설과 UAE 푸자이라 및 오만 저장시설을 연결하는 셔틀선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9일 김동관 한화 수석부회장이 술탄 알 자베르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 겸 아드녹 최고경영자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운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장기용선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산유국이 안정적인 수출을 위해 선박을 직접 소유하거나 장기간 확보할 경우 해운사는 10~20년 단위 장기 운송계약 기회를 늘릴 수 있습니다.
조선업계도 발주 확대 가능성을 주시합니다. 중고선 가격이 시장가보다 높게 형성되면, 선주로서는 중고선 매입 대신 신조 발주 유인이 커집니다. 아드녹L&S는 이미 신조선 확보에 뛰어들었습니다. 원유선과 LNG·LPG 운반선을 포함해 25~30척을 여러 조선소에 발주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앞서 2024년에는
삼성중공업(010140)과
한화오션(042660)에 LNG선 4척씩 총 8척을 발주했습니다.
조선업계는 아드녹과 협력 확대에 따른 추가 수주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화오션(042660)은 아드녹이 발주한 VLCC와 LNG 운반선 등을 건조하며 협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김동관 한화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9일 방한한 술탄 알 자베르 아드녹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에너지 안보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한화가 정유·석유화학, 조선, 방산 등으로 아드녹과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는 만큼, 아드녹이 선박 확보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까지 강화하면 국내 기업의 사업 기회도 한층 커질 전망입니다.
다만, 산유국의 선박 확보가 ‘선복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변수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된 이후 신규 선박이 대거 시장에 투입되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장기 운송계약을 기반으로 한 선박인지가 중요해 질 것”이라면서도 “일단 산유국 입장에서도 당장 실어 나를 선박 확보가 절실해진 만큼 국내 업계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