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 매장량의 20% 이상에 대해 실질적 지배권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의 공급 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로 원유 공급망 다변화가 절실한 국내 정유업계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을 통한 대체 수급처 확보 가능성을 모색 중입니다. 다만 높은 장거리 운송비와 까다로운 정제 과정 등은 본격적인 도입 확대를 위해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베네수엘라 석유 시추 시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3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베네수엘라 전체 확인 원유 매장량 3040억배럴 중 21%에 해당하는 650억배럴에 대해 25년간 실질적 통제권을 획득했습니다. 미국 기업이 개발 회사 지분 35%와 생산량의 20%를 원가에 우선 구매하는 권리를 갖는 구조입니다. 기존 자국 매장량 690억배럴을 더하면 미국의 통제 가능 매장량은 1340억배럴로 늘어나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이란에 이은 세계 5위 규모로 도약하게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쉐브론 등 미국 기업이 투자를 주도하며 유전 개발을 가속할 예정입니다.
막대한 자본 투입을 바탕으로 현재 125만b/d(일평균 배럴) 수준인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은 중장기적으로 200만b/d에서 300만b/d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생산량이 대폭 증가할 경우 쿼터 제한을 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전격 탈퇴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윤재성 하나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실질적 지배권 확보는 OPEC 균열을 유발하고 전통 에너지 중심의 패권 장악을 위한 노림수”라며 “이 과정에서 미국 원유 정유업체와 한국 정유업체의 수혜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연안을 항해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유업체들이 자국으로 유입되는 베네수엘라산 초중질유 사용을 늘리면 기존에 주로 소비하던 멕시코나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가 아시아 시장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중동 산유국 입장에서는 아시아 시장을 두고 경쟁자가 늘어나는 셈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불안 등으로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아시아 지역 정유사들의 기조와 맞물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판매가격(OSP)은 구조적인 하락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원유 수급망 재편 흐름 속에 국내 정유업계도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GS칼텍스는 지난 6월 25년 만에 베네수엘라산 원유 11만배럴을 시험 도입해 자사 정제 설비 적합성과 제품 수율 평가를 진행 중입니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이노베이션(096770),
S-Oil(010950) 등 다른 정유사들 역시 중남미 지역을 포함한 원유 수입 다변화 가능성과 경제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외교부와 대한석유협회 등도 카리브 지역 원유 공급망 확보를 지원 중입니다.
실제 상업적 도입 확대로 이어지기까지는 물류비와 정제 공정상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중금속과 황 성분이 많은 고유황 초중질유라 가공 난도가 높고 지리적으로도 운송 거리와 기간이 길어 물류비 부담이 상당하다”며 “국내 정유 설비가 중간 등급 원유에 최적화돼 있는 만큼 중동 원유보다 배럴당 최소 5~10달러 이상 저렴해야 정제와 물류비용을 감안한 실질적인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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