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연 전 경기도지사가 쓴 <분노를 넘어, 김동연>엔 그가 2022년 20대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윤석열·이재명 두 대선 후보와 단일화를 타진한 과정이 나옵니다.
김 전 지사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한 번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때 윤 후보는 제일 먼저 "선배님 같이하십시다"라는 말부터 꺼냈습니다. 그러고선 1시간40분 동안 진행된 대화의 90%를 혼자서 이야기하는 데 썼다는 겁니다. 김 전 지사의 여러 제안엔 밑도 끝도 없이 "그건 (국민의힘으로) 들어와서 생각을 해보자"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반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는 세 차례 만남을 가졌습니다. 김 전 지사가 이 후보에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국민과 역사"라고 답해서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이 후보가 했던 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다"라는 어록에서 따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당시 김 전 지사가 결국 이 후보와 단일화를 했던 걸 보면, '가장 중요한 건 국민과 역사'라는 바로 그 한마디에서 느꼈던 정치적 철학과 국정 운영의 진정성이 크게 작용했던 걸로 추측됩니다.
비단 김 전 지사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겁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윤씨의 잇따른 국정 파행과 검찰권 남용, 정적에 대한 무리한 수사, 김건희씨의 국정농단, 각종 비선 실세 논란, 12·3 계엄으로 이어진 파국의 시간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지도자는 단순히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역사와 국민에 대한 책임을 국정의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재명정부가 들어선 이후 2기 내각으로 발표된 인선, 특히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을 둘러싼 논란들을 보자면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강조한 '가장 중요한 건 국민과 역사'라는 다짐이 무색해집니다.
우선 김승원 후보자가 그렇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법치주의 원칙을 지키고 법 집행의 공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법무 행정의 수장입니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 신약 청탁 및 브로커 연루 의혹, 과거 음주운전 전력에 이어 가족 특혜 채용 의혹까지 제기되며 자질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용혜인 후보자는 비례대표-장관 겸직 고수 논란과 가족 정당 시비를 겪고 있습니다. 젠더 갈등을 다독이고 부처의 존재 이유를 정책적 전문성으로 제대로 증명하는 일을 한 바도 찾기 어려워 진영 간 정치적 연대의 상징성으로 발탁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편치 않습니다. 엄중한 안보 사각지대를 책임져야 할 수장임에도 아파트 부정청약 의혹과 아들의 7억원 상당의 상가 매입 논란 등이 드러나며 도덕성에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 대통령이 인용했던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다"라는 말은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그럴듯한, 교묘한 수식어가 아니었을 겁니다. 세 모으기식 정치공학보다 명분과 정당성이 더 중요하다는 다짐이었을 터입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지금, 청문회라는 현실의 시험대 위에서 그 무거운 '국민과 역사'라는 가치는 과연 어느 장관 후보자의 자리에 남아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병호 탐사보도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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