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로봇은 알아서 걷지 않는다, 법이 대신 걸어준 것이다
제24회/ 최홍규 연구위원(EBS)·미디어학 박사
2026-09-10 17:55:15 2026-09-10 17:55:15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서울의 한 사거리, 무릎 높이의 배달로봇 한 대가 신호등 앞에 멈춰 선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로봇을 앞질러 걷고, 로봇은 그 뒤를 얌전히 따라간다. 누군가 스쳐 지나가며 중얼거린다. "저거 혼자 잘 다니네." 그런데 그 '혼자'라는 말 안에는, 사실 수많은 사람의 손과 법 조항 하나가 숨어 있다. 로봇이 홀로 걷는 것처럼 보이는 이 흔한 장면을, 두 명의 연구자가 두 주 가까이 로봇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걸으며 분석했다.
 
2026년 3월 공개된 미국의 시러큐스대학교(Syracuse University)와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캠퍼스(University of Illinois Chicago) 연구팀의 논문은, 서울 두 곳의 배달로봇 운영 현장을 120시간 넘게 관찰한 기록이다. 연구팀은 로봇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걸으며 현장을 기록하는 방식을 택했다. 매장 직원과 현장 관리자를 인터뷰하고, 배달기사·환경미화원·경비원처럼 로봇과 매일 마주치는 거리의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모은 기록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로봇의 '자율'이 실은 무대 뒤 인력으로 떠받쳐진 연출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복 차림에 마스크를 쓴 현장 관리자가 로봇의 경로와 속도를 실시간으로 조정하며 뒤를 쫓았다. 이들은 애초에 근처 건물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고객이 물건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만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매장 직원은 로봇 전용 애플리케이션과 매장 자체 주문 시스템을 각각 따로 확인하며 음식을 실었고, 로봇 한 대에 담기지 않는 주문은 여러 대에 나눠 실어야 했다. 도착 알림에 제때 응답하지 않으면 애플리케이션은 쉬지 않고 진동하며 재촉했다. 로봇은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곳곳에서 사람이 로봇의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로봇이 사람과 스치는 순간에도 눈에 띄는 비대칭이 있었다. 사람은 로봇을 피해 걸음을 늦추거나 방향을 틀었지만, 로봇은 좀처럼 먼저 비켜서지 않았다. 대신 경적음이나 "배달 중입니다, 지나가겠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으로 길을 비키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 신호는 사람에게만 쓰였다. 강아지나 배달 상자, 다른 로봇을 만나면 로봇은 소리 없이 조용히 돌아갔다. 연구팀은 이 비대칭에 '로봇 특권(robot privileg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봇이 길을 비키지 않는 게 아니라, 비키지 않아도 되도록 설계됐다는 뜻이다.
 
이 모든 장면이 거리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에 있었다. 연구팀이 '로봇 거리'와 '스마트시티 리빙랩'으로 구분한 두 서울 현장은 국가 지원 배달로봇 테스트베드였다. 논문에 따르면 이곳의 로봇 운행은 정부 규제 샌드박스가 제공한 교통 관련 규제의 예외와 데이터 프라이버시 관련 허용이라는 제도적 발판 위에서 가능했다. 로봇이 '자율적으로' 거리를 다니는 장면은, 기술만의 성취가 아니라 국가가 마련한 규제 특례와 실증 환경 위에서 가능해진 장면이었다. 흥미롭게도 로봇을 매일 마주치는 배달기사나 경비원은 로봇을 '귀엽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손아랫사람의 성실함을 칭찬할 때 쓰는 '기특하다'는 표현을 썼다. 로봇을 스치듯 보는 사람과 매일 함께 일하는 사람이 로봇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칼럼의 지면을 통해 로봇이 왜 사람에게 선뜻 길을 비켜주지 못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답은 로봇 내비게이션 알고리즘의 한계, 즉 기술의 문제였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정반대다. 로봇은 왜 비키지 않아도 되는가. 그 답은 로봇 안에 있지 않고 교통 관련 규제의 예외 조항 안에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스마트시티 담론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부분이다. 우리는 로봇의 성능을 이야기하지만, 그 로봇이 거리에 나오도록 허가한 규칙과 그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노동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스마트시티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로봇의 성능 인증이 아니라, 다음 세 가지 규칙이다. 첫째, 지금은 임시로 열어둔 법적 예외가 영구적인 제도로 바뀔 때, 그 제도 안에 로봇을 대신 걷게 하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이 함께 담겨야 한다. 둘째, 로봇이 사람에게 길을 요구하는 방식만큼, 사람도 로봇에게 대등하게 요구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셋째, 로봇 운영사는 자신들이 얼마나 자주 사람의 개입에 의존하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빠진 채 '자율주행 로봇'이라는 말만 반복된다면, 그 자율은 기술의 성취가 아니라 홍보의 성취로 남을 것이다.
 
로봇이 좋아 보이는 이유는 로봇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 뒤에서 누군가 대신 걷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스마트시티의 진짜 주인공은 로봇이 아니다. 그 로봇에게 길을 터준 법이고, 법이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다. 로봇이 도시를 걷게 하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로봇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누가 그 길을 대신 걷고 있는가이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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