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벨트'로 불리는 경기 남부(안성·이천·평택·용인) 일대가 극심한 주거 미스매치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대출 규제와 고분양가 여파로 마이너스 프리미엄과 계약 해지가 속출하며 '불 꺼진 아파트'가 늘어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청년과 산단 노동자들이 거주할 원·투룸을 찾지 못해 입주 대기 전쟁을 치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미분양 매입 지원책에서 소외되고, 공공임대 정책마저 현장 실정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공급과 수요 사이의 단절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현장 기사와 실태 점검을 통해 반도체 배후도시의 주거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현장 밀착형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뉴스토마토 홍연·박선영 기자] 지난 14일 찾은 경기 안성시 공도읍. 최근 1~2년 새 대단지 신축 아파트 입주가 잇따른 이곳에는 공사를 마쳤는데도 팔리지 않은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남아 있습니다.
올해 3월 입주를 시작한 한 대단지에선 전용 84㎡가 분양가보다 약 8000만원 낮은 3억원대 후반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DSR 규제로 잔금대출이 막힌 수분양자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매물을 내놓고 있는 사례가 많다"며 "이 단지에만 50가구 안팎이 남았고 입주율은 85%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공도읍의 또 다른 단지는 세전 3700만원의 입주 지원금과 잔금 27개월 유예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분양 관계자는 "담보대출을 받으면 사실상 1300만~1600만원만 있으면 입주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옥산동의 한 모델하우스에서도 1·2차 분양 뒤 남은 물량을 판매하며 현대차·기아 배터리 연구소와 반도체 소부장 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수요를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주택정책과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안성의 민간 미분양은 919가구입니다. 이 가운데 122가구는 준공 후 미분양입니다. 미분양 아파트는 곳곳에 남아 있었지만, 청년과 노동자가 정작 들어가 살 전월세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기 안성시의 한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뉴스토마토)
안성에서 용인으로 출퇴근하는 30대 A씨는 독립을 미뤘습니다. 그는 "월세 100만원 이하로는 선택지가 거의 없고 아파트 전세는 매물 자체가 없다"며 "원룸으로 눈을 낮추거나 예산을 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안성의 한 공인중개사는 "1년 전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 60만원이던 빌라가 지금은 75만~80만원"이라며 "원룸은 광고를 올리면 집도 보지 않고 계약금부터 보낸다"고 했습니다. 이어 "기숙사 생활이 불편해 방을 얻어 나오는 산단 근로자가 많은데 물건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도 "원룸이든 소형 아파트든 다 부족하다"고 전했습니다.
용인의 한 동물보호단체 대표 B씨는 직원 숙소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빌라를 분양받았습니다. 그는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전세와 월세를 모두 알아봤지만 물건이 없었다"며 "대출 규제로 추가 분양도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작년 월 80만원이던 방이 지금은 160만원을 줘도 서로 달라고 하고, 불법 개조한 쪽방조차 월 50만원을 받는다"며 "직원들이 나간 집을 중고 거래 앱에 올렸더니 하루 만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이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발읍 중개업소들은 "원룸은 구하기 힘들고 전세는 더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중개사는 "반도체 인력은 계속 들어오는데 도로·도시가스 같은 기반시설 한계로 소형 주택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SK하이닉스 정문 앞 아파트와 오피스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집이 모자란 게 아니다. 연결되지 않을 뿐이다"
취재 중에도 회사 주거비 지원을 받는 노동자가 보증금 500만원, 월세 70만원대 아파트를 찾았지만 계약 가능한 매물은 없었습니다. 중리동에서는 여러 중개업소에 연락을 돌린 끝에 겨우 입주 가능한 원룸 몇 곳을 찾았습니다. 안흥동 오피스텔 월세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 120만~13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신축 아파트 분양관은 각종 혜택을 내걸고 계약자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안흥동의 한 분양관은 중도금 무이자, 확장비 무상, 계약금 페이백 등 약 8000만원 상당의 혜택을 제시하며 선착순 분양 중이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P5 공사가 진행 중인 평택은 임대난이 더 심각합니다. 평택의 한 공인중개사는 "올해 3~4월부터 원룸과 소형 아파트 임대 물건이 거의 사라졌다"며 "투룸이나 소형 아파트에 건설 인력이 두세 명, 많게는 네다섯 명씩 함께 살고, 그 영향이 안성과 용인까지 번졌다"고 말했습니다.
고덕신도시 옆 브레인시티에서 입주가 시작한 한 단지에서는 분양가보다 5000만~8000만원 낮은 급매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잔금 대출을 받지 못한 수분양자들이 매물을 내놓지만, 매수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전언입니다.
LH 전세임대 대상자로 선정된 청년조차 집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지원 한도인 1억2000만원 안팎으로는 소형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남은 다가구 주택은 선순위 임차인이나 대출이 끼어 있어 LH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집주인들도 LH 전세임대를 꺼립니다. 세입자가 줄을 서는 상황에서 굳이 LH를 거칠 이유가 없는 데다, 퇴거 때 전세금 반환 확인서에 도장을 찍어 보내야 하는 등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현장 중개업계에선 미분양을 임대 공급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이천의 한 공인중개사는 "LH가 기축 아파트를 매입해 청년 임대로 공급하면 수요는 있을 것"이라고 했고, 평택의 한 공인중개사도 "미분양 아파트를 LH 매입 대상에 포함하면 아파트는 남고 임대 물건은 부족한 불균형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기도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도내 민간 미분양은 1만4394가구로 한 달 새 841가구 늘었습니다. 평택은 3511가구, 이천은 1194가구에 이릅니다. 반도체 배후도시에 미분양 아파트는 쌓여가지만, 청년과 노동자를 위한 공공임대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박선영 기자 sunny6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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