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민자도로를 만난다. 조금 더 빠른 길을 선택하는 대신 통행료를 내게 된다. 요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길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터널을 뚫고 교량을 놓고, 빠른 길로 다닐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돈이 들었다는 점이다.
인터넷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매일 보는 영상과 검색 결과, 소셜미디어의 수많은 콘텐츠는 실제로는 누군가 구축한 망을 타고 움직인다. 통신사는 전국에 유·무선망을 깔았고 콘텐츠제공사업자(CP)는 그 위에 검색과 동영상, 소셜미디어 같은 서비스를 올렸다. 좋은 콘텐츠가 이용자를 불러오면 통신 상품의 가치도 높아졌다.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이끌었다.
갈등은 오가는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시작됐다. 동영상 시대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성장하면서 트래픽이 급증하자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는 지속적인 망 투자를 위한 비용분담 필요성을 제기했다. CP는 콘텐츠가 통신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이용자들이 네트워크 연결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맞섰다. 망 이용 대가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이 오래된 논쟁은 더 복잡해졌다. 생성형 AI가 일상이 되고 영상 생성과 AI 에이전트가 확산할수록 데이터는 더 많이, 더 자주 오간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데이터센터(AIDC)를 늘리는 것만으로 AI 인프라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데이터센터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유선망과 백본, 엣지까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AI도 결국 망을 타고 움직인다.
달라진 것은 사업자 간 관계다. 과거에는 망을 구축한 ISP와 이를 이용하는 CP의 구분이 비교적 선명했다. 이제 통신사들은 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DC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AI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는 망에 대규모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사업자인 동시에 통신사가 구축한 AIDC의 고객이 됐다. 망을 둘러싸고 대립했던 사업자들이 AI 시장에서는 서로의 고객이자 사업 파트너가 된 셈이다.
그렇다고 망 투자 비용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 서비스가 망을 핵심 인프라로 활용하는 만큼 AI 사업자도 지속적인 네트워크 투자에 일정 부분 기여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과거처럼 CP와 ISP를 양쪽에 세워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만 따질 게 아니라 비용 분담과 공동투자, 장기계약 등 달라진 관계에 맞는 방식을 처음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 AI 시장이 커진 뒤 다시 비용 문제로 충돌하기보다 사업자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할 수 있는 원칙을 미리 만들어두자는 것이다.
AI 산업은 이제 막 본격적인 확장기에 들어섰다. 과거 동영상 시대처럼 시장이 커진 뒤 비용 분담을 놓고 다시 충돌하기보다 산업이 커지는 지금부터 원칙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새롭지만 그것이 움직이는 길까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길 위에서 사업한다. 공짜로 흐르는 것은 없다. 이번에는 길이 붐빈 뒤 서로 비용을 떠넘길 게 아니라, 길을 계속 넓힐 비용을 누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나눌지 먼저 정할 때다.
이지은 테크지식산업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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