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기유통원, 무리한 중기 직생 취소…절차적 하자 드러나
‘완제품 하청’이라더니 ‘설계 미이행’으로 처분 사유 변경
자체 설계도면 보유에도 조달 퇴출 강행…부실 검증 도마에
2026-10-29 15:51:17 ㅣ 2026-10-29 15:54:14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공공조달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직접생산 여부를 심사·제재하는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전 중소기업유통센터)이 처분 사유를 임의로 변경하고 사실관계를 오인해 무리한 제재를 내렸다가 법원에서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전통지 단계에서 제시한 위반 사유와 실제 처분 사유가 달랐고, 기업의 자체 설계 역량에 대한 기초 조사도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교통안전시설물 제조 중소기업 A사는 유통원을 상대로 직접생산확인취소처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최근 2심에서 1심 패소 판결을 뒤집고 승소했습니다. 이 판결은 유통원이 상고하지 않아 지난달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A사는 2022년 7월 유통원으로부터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인 바닥형 보행신호등에 대해 직접생산확인을 받았습니다. 이후 서울지방조달청과 계약을 맺고 2022년 10월 고양시 초등학교 등 9개소 설치공사 관급자재로 해당 물품을 납품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24년 1월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직접생산확인 및 취소 업무를 위탁받은 유통원은 A사에 처분사전통지서를 보내 “타사 완제품을 구매해 납품(하청생산)했다”며 직접생산확인 취소 절차를 밟았습니다. 같은 해 2월 열린 청문에서도 유통원은 타사 완제품 납품을 위반 근거로 제시했고, A사는 “부품만 구매해 필수공정을 직접 이행했다”고 소명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통원은 2024년 3월 A사가 보유한 모든 제품의 직접생산확인을 취소하면서 처분 사유를 바꿨습니다. 당초 지목한 ‘타사 완제품 구매 납품’ 대신 ‘외주업체가 설계한 물품을 납품해 필수공정(설계)을 미이행했다’는 이유를 새로 내세웠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통원의 처분에 절차적 하자와 실체적 하자가 모두 존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타사로부터 완제품을 구입했다’는 사실과 ‘외주업체에 설계를 의뢰했다’는 사실은 거래 대상과 문제가 된 공정 자체가 달라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또 유통원이 변경된 처분 사유에 대해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기회를 주지 않아 A사의 실질적인 방어권 행사도 침해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실체적 처분 사유 역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관련 고시상 바닥형 보행신호등의 설계는 외주가 금지된 필수공정에 해당합니다. 유통원은 A사가 2022년 1월 외주업체와 체결한 개발계약서를 근거로 설계 외주를 주장했으나, A사 기업부설 연구소는 그보다 앞선 2021년 9월 이미 해당 물품의 상하부 하우징과 인쇄회로기판(PCB) 등 모든 구성품 규격이 담긴 최초 설계도면을 자체 작성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A사가 외주업체와 맺은 계약과 대금 지급 명목은 기존 신호등과 별개인 ‘음성안내 보조장치 일체형(AIO) 제어보드’ 등 신제품 개발에 관한 것이며, 조달청 물품식별번호도 서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외주업체가 부품 공급을 위해 최초 설계도면의 구조나 규격 변경 없이 자재 모델명과 입체도 등만 보완한 것을 두고 설계 공정을 외주화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이에 대해 유통원 관계자는 “사전처분 통보 사항을 청문을 통해 소명하는 과정에서 더 중요한 공정 문제를 지적하게 됐고, 두 사유가 위반 규정상 같은 호에 포함돼 유사하다고 봤으나 법원에서 절차적 하자로 판단해 아쉬움이 있다”며 “1심에서는 우리 측 의견이 충분히 인정됐고 검증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판결에서 지적된 절차적 부분 등은 앞으로 더 보완해 나가겠다”고 해명했습니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하도급 납품 등으로 적발될 경우 해당 품목뿐 아니라 기업이 보유한 전 품목의 직접생산확인이 취소돼 사실상 조달 퇴출로 이어집니다. 위탁기관인 유통원이 기초적인 도면 작성 시점과 계약 성격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채 처분 사유를 바꿔가며 제재를 남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통원의 전문성 부족과 주먹구구식 행정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유통원은 사명 변경 전인 중기유통센터 시절, 대규모 피해를 낳은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 당시에도 부실한 검증으로 논란을 불렀습니다.
 
당시 유통원은 자본잠식 상태여서 유동성 문제로 계약이행보증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한 티메프를 온라인 판로 지원 사업 운영기관으로 선정했습니다. 규정을 잘못 해석해 보증보험을 보증금으로 갈음하도록 허용하는 등 안일한 대처로 일관하다가 결국 중소상공인들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입니다. 이태식 유통원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태에 대해 “내부 법률 검토 결과 가능하다고 해 수용했다. 지나고 보니 검사가 부족했다”며 공식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자본잠식 플랫폼의 재무 상태는 눈감아주며 대규모 미정산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던 유통원이, 정작 자체 기술력으로 정상 납품한 중소기업에는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며 조달 시장 퇴출이라는 치명적 제재를 가한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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