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형진기자]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기업의 '홍보맨' 얘기를 기사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업무상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애환을 너무 잘 알수 밖에 없어 '한솥 밥을 먹는 사이'라는 일종의 동료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심스럽게나마 한 재벌그룹 홍보맨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이유는, 그의 스토리가 단순히 한 중역의 '조직내 부침'이라는 현상을 넘어, 재벌총수와 임직원간 '관계의 진실' 한 토막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어서다.
얘기는 이렇다.
오랫동안
CJ(001040)의 홍보업무를 총괄해오던 중역 A씨는 최근 단행된 그룹인사에서 특별한 보직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 2선으로 후퇴했다.
그룹 사령탑에서 계열사 홍보실장으로 밀렸다가, 결국 그 보직마저 지키지 못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CJ와 포스코-삼성 컨소시엄이 맞붙었던
대한통운(000120) 인수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A씨는 인수전 막바지
삼성증권(016360)이 갑작스럽게 CJ쪽 주간사를 포기하고, 삼성SDS가 포스코 컨소시엄을 통해 인수전에 가세하자 강한 어조로 삼성측의 이중플레이를 비판했었다.
당시 A씨는 "삼성의 행태는 CJ그룹 오너에 대한 '삼촌의 조카 죽이기'에 나선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재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저 정도 수위라면 오너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강공'이었다.
결국 삼성은 CJ의 맹공 탓에 여론전에서 밀리며 상당히 위축된 모습을 보이다가, 예상과 달리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인수전에서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았던 A씨가 갑자기 2선으로 물러났다.
그때만해도 업계에서는 "승자인 CJ가 삼성과의 관계를 생각해 A씨를 잠시 물려둔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A씨는 곧 계열사 홍보책임자로 복귀했다.
그러나 세간의 예상과 달리 A씨는 5개월여만에 이 자리마저 지키지 못하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담당'이라는 자리로 물러났다. 사실상 완전한 2선후퇴라는 평가가 나왔다.
현재 A씨에게는 중역에 걸맞는 방이나 비서조직도 없이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별도 공간만 주어졌다.
CJ측이 이에 대해 "자유로운 위치에서 그룹 리스크 관리 등 큰 차원의 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안팎에서 보는 시선은 다르다. 다른 재벌기업의 한 홍보맨은 "조직이 사활을 건 싸움에서 온몸을 던져 공을 세웠지만, 결국 총수 일가의 관계에서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며 "그게 '머슴(임직원)'들의 운명"이라고 자조했다.
CJ가 이를 통해 삼성과의 관계를 회복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삼성측은 18일 삼성에버랜드 선산에서 열리는 고 이병철 회장 추도식때 장손과 삼촌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추도식 행사 시간을 완전히 달리한다고 한다.
뉴스토마토 이형진 기자 magicbulle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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