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윤성수기자]
앵커 : 미국은 우리나라에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라고 처음으로 공개 요청했는데요. 양국은 협의 끝에 이란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데 사실상 뜻을 같이 했습니다. 하지만 유가변동에 민감한 정유업계는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 이 내용 정치경제부 임애신 기자, 산업부 윤성수 기자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기자 : 네.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이란·북한제재조정관 등 미국측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건데요. 지난 방문 때 아인혼 조정관은 "이란이 원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줄어들기를 원한다"며 "이란으로부터의 원유수입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한 바 있습니다.
앵커 : 3일간 아인혼 조정관 등 대표단이 바삐 움직였다고 하는데요.
기자 : 네. 아인혼 조정관은 16일 방한하자마자 청와대 외교안보 핵심 참모인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을 만난 데 이어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를 찾아 대이란 제재 동참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앞서 아인혼 조정관은 김재신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만나 이란산 원유 구매와 이란 중앙은행과의 거래를 줄여 달라며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협조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 한달 전 아인혼 조정관이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미국의 압력과 우리 정부의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였을텐데요. 양국간 협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요?
기자 : 우리 정부는 미국의 이란 핵 제재 동참요구에 대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실상 미국측 요구를 받아들여 이란산 원유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한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해야 할 정부로서는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라는 미국 측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이란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에 뜻을 같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수입을 줄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합니다.
앵커 : 그런데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한달 전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이 절반 가량 줄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건가요?
기자 : 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우리나라가 이란에서 들여온 원유는 63만9000톤으로 지난 11월보다 46.5% 감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란 제재 흐름에 맞춰 업계가 도입량을 미리 줄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정유업체들은 재고 수준에 따른 일시적인 감소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앵커 : 그렇군요. 현재 우리나라는 이란으로부터 약 9.7%의 원유를 의존하다고 하던데요. 어제 미국과의 협의 결과 이란산 원유를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기정 사실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정부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나요?
기자 : 현재 정부는 이란산 원유를 얼마나 줄여서 수입할지에 대해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인데요. 그럼에도 물밑에서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중동을 순방 중인 김황식 국무총리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왕세자로부터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필요시 원유를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이란산 원유를 대체할 원유를 도입하더라도 원유 종류가 바뀌면 경제성이 저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앵커 : 이란이 미국 제재로 인해 원유를 수출할 수 없게 되면 다른 산유국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출할 수 없도록 봉쇄하겠다고 했지요?
기자: 네.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통해 압박을 강화하자 이란도 초강수를 둔건데요.호르무즈 해협은 원유 수송의 전략적 요충지로, 세계 유조선의 약 40%가 지나갑니다. 한국 원유 수입액의 82%가 중동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피해가 막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에 대비해 사우디아라비아 젯다항과 아라비아해 연안의 오만 살랄라 항으로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가 미국 동맹국으로서의 입지와 우리나라 이익 대변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잘 잡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앵커 : 다음은 업계 분위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윤성수 기자. 이란산 원유수입을 단계적으로 낮추거나 중단할 경우 정유업계의 피해는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기자 : 네. 유가 움직임에 민감한 정유업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전망입니다. 이란에서 수입받는 국내 정유사는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입니다. 당장 두 회사는 대체 수입처를 구하기 쉽지 않은데다 다른 수입처를 찾더라도 기존보다 도입단가가 높아져 수천억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유사의 초과비용이 늘어날수록 국내 기름값은 연동돼 오르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은 커질 전망입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작년 11월까지 이란산 원유는 국내 전체 수입량의 9.7%인 8259만배럴을 기록했습니다. 이 중 하루평균 SK에너지가 연간 도입물량의 10%인 13만배럴, 현대오일뱅크는 18% 가량인 7만배럴을 이란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업계는 이란산 원유도입을 중단하고, 타 국가 원유로 대체할 경우 연간 40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앵커 : 그럼, 수입하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추가부담 비용이 커질 전망인데요.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자 : 작년 11월 기준으로 이란산 원유값은 배럴당 약 103달러로 인근 중동국가에 비해 2~5달러가량 쌉니다. 이에 상대적으로 싼 원유를 수입받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그 외 국가에서 수입하는 것 보다 추가부담액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전 KB투자증권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배럴당 3달러를 추가 지불해 원유를 도입할 경우 연 1100억원의 원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연간 300억~400억원 가량 추가비용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신뢰문제에 따른 대체 거래선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거래선과 한번 계약을 끊으면 회복하기 힘든 것이 원유거래이기 때문입니다.
앵커 : 그럼, 정유사들은 어떤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나요?
기자 : 현재 정유사들은 뚜렷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미국에 이란산 원유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입장을 전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가 먼저 나서 수입 다변화와 같은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오일뱅크는 "당장 공급차질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란쪽 수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인근 중동 국가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방안 등 다각도로 검토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SK에너지도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에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앵커 : 결국, 이란산 석유수입이 줄 경우 그 외 석유 수요는 늘어나고, 국제유가는 급등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윤 기자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기자 : 네. 중동지역 불안은 여전히 국제유가 상승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을 통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점화되는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는 평균 160~21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국제유가 급등은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특히 국제유가의 급등에 따른 피해는 수입받는 정유사 뿐만 아니라 기름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입니다.
앵커 : 이란 리스크로 정유업계 뿐만 아니라, 물가에도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네요. 임애신, 윤성수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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