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눈치만 보는 정유업계, '이란 리스크'에 손실 불가피
정유사 피해액 수천억.."기름값 상승,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2012-01-18 15:47:46 2012-01-18 15:47:46
[뉴스토마토 윤성수기자]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라는 미국 정부의 압박에 국내 정유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대체 수입처를 구하기 쉽지 않은데다 다른 수입처를 찾더라도 도입단가가 높아져 수천억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유사의 초과비용이 늘어날 수록 국내 기름값은 인상돼,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국내 정유4사 중 이란산 원유는 SK이노베이션(096770)(SK에너지)과 현대오일뱅크가 수입하고 있다.
 
◇원유단가 배럴당 2~5弗↑..피해액은 '수천억원'
 
1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까지 이란산 원유는 국내 전체 수입량의 9.7%인 8259만배럴이다. 이란산 원유도입을 중단하고, 타 국가 원유로 대체할 경우 연간 40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 이란산 원유 수입 단가는 배럴당 102.89달러로 같은 중동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106.29달러), 쿠웨이트(104.71달러), 아랍에미리트(108.60달러) 보다 2~5달러 가량 낮다.
 
이처럼 도입단가가 높아지면 정유업계의 부담도 커진다. 특히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직접 도입하고 있는 SK와 현대오일뱅크의 부담이 크다. SK는 연간 도입물량의 10%인 하루 13만배럴, 현대오일뱅크는 18%인 7만배럴 가량을 이란에 의존하고 있다.
 
박재철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은 배럴당 3달러를 추가 지불하고 원유를 도입할 경우 연 1100억원의 원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현대오일뱅크 역시 300억~400억원 가량 추가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10~20년의 장기계약이라 대체 거래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유사 한 관계자는 "신뢰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에 거래선과 한번 계약을 끊으면 회복하기 힘든 것이 원유거래"라며 "한번 거래를 끊으면 이후 제재가 풀린 다음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GS칼텍스와 에쓰오일(S-Oil(010950))은 상대적으로 느긋하지만, 이란산 원유 수입이 전면 금지되면 국제유가가 오를 수밖에 없어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이란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방침이지만 어느 정도선까지 감축할지에 대해서는 고심 중이다. 특히 비상 상황시 정부 비축유 사용 등 다각도로 대응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 "정부 입만 보고 있다"
 
이란 원유 수입에 대해 이미 일본과 중국은 수입선 다변화를 논의 중이고, 유럽연합(EU)까지 중단에 나서고 있어 국내 정유업계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유업계는 현재 정부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미국에 이란산 원유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입장을 전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가 먼저 나서 수입 다변화와 같은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당장 공급차질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란쪽 수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인근 중동 국가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방안 등 다각도로 검토중에 있다"고 밝혔다.
 
SK에너지 관계자도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국내 기름값 폭등 우려도
 
중동지역 불안은 여전히 국제유가 상승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간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점화되는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는 평균 160~21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국제유가 급등은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은 국제유가의 급등을 불러오게 된다"며 "정유사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기름값 부담을 떠안아야 된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은 "정부는 이란 원유수입을 단계적으로 인하해 피해를 줄여야 한다"며 "이란 등 중동 이외의 국가에도 공급선을 다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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