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작심 발언이었다.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확고한 입장을 내보였다. 발언의 파장은 단숨에 삼성을 넘어 범삼성가로 전파됐다.
17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쏟아낸 발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유산 분쟁과 관련해 전에 없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줬다.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는 한마디가 모든 걸 말해준다.
그는 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누나 이숙희씨 등이 제기한 유산 일부 반환 소송에 대해 “섭섭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대가 없었기에 섭섭함도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어 “그쪽이 소송하면 끝까지 고소해서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라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 제기됐던 타협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이 회장은 곧이어 “상대가 안 된다”고도 했다. 대적하려면 해보라는 뜻이다.
이 회장은 “선대 회장 때 다 분재(分財)된 거고, 그래서 각자 돈들을 갖고 있고 CJ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CJ그룹을 구체적으로 지목함으로써 이맹희 전 회장의 배경에 CJ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까 욕심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돈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법적·도덕적 우위를 선점하는 전략이다.
삼성 관계자들도 1조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유산 분쟁을 대하는 이 회장의 단호함이 재확인됐다고 설명했다.
CJ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발언 수위도 높았다.
CJ 관계자는 “미행건에 대해 해명이나 사과 한마디 없는데다, 돈에 욕심이나 내는 수준 이하로 폄하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삼성으로선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미행사건을 부각시켜 맞불을 놓는 전략이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CJ는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날 최근 연이은 그룹의 각종 논란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고칠 게 많다. 항상 새롭게 보고, 크게 보고, 앞을 보고, 깊이 보고, 이걸 중심으로 모든 사물을 분석하는 버릇이 들어야 한다고 맨날 회의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떠든다”고 했다.
관행에 억눌린 그룹의 사고를 질타한 것이다. 문제 본질을 외면한 채 표피만 보다 보니 엉뚱한 대응이 나온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공정위 조사 방해 파문과 이재현 CJ 회장 미행건 등이 이에 해당된다.
“맨날 똑같은 소리를 떠든다”는 이 회장의 진노가 이날 삼성 전체를 초비상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것도 시간을 1시간이나 앞당긴 출근길에 한 말이다. 이 회장은 지난주부터 평소보다 1시간 빠른 오전 6시40분쯤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의 기강은 회장님의 이날 한마디로 다 잡혔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