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국세청의 세무조사 칼날이 어느 때보다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올 상반기 50대 대기업 오너 일가의 주식변동 및 지분매입 자금출처에 대한 분석작업을 마치고 이를 토대로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이미 올해에만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I 등 삼성그룹계열사와 기아자동차, LG전자, SK건설 등 주요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국세청이 대기업 그룹을 향한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대기업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달 초에는 한류열풍으로 유명한 대형 연예기획사 40여곳에 대한 탈세조사에 착수했다고 국세청이 직접 밝히기도 했다. 외국인 성형관광 전문병원 등 전문직 및 현금수입업종에 대한 탈세조사도 강화했다.
지난해 선박왕, 구리왕 등의 별칭을 탄생시킬 정도로 특히 역외탈세 부분에 집중했던 국세청이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인 부담을 안고서도 세무조사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 세수입 비상, 국세청이 나설 때?
국세청의 칼끝이 해마다 매서운 것은 아니었다. 비즈니스프렌들리(친기업) 정책을 표방하며 이른바 '대못 뽑기'가 한창이던 2008년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에는 국세청도 기업활력제고를 위해 불필요한 세무조사를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그러나 2008년이 저물 무렵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에 경기침체가 급속화되고, 세입여건도 악화됐다. 통상 경제성장을 감안하면 국세수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0.3% 성장에 그친 2009년에는 전년도보다 세수입이 3조원 가까이 줄었다.
정부는 올해 세수입 여건도 2009년 못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5월말까지 거둬들인 세수실적은 91조1000억원으로 예상 세수입 대비 징수실적으로 나타내는 세수진도비는 지난해보다 1%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47.3%로 낮다.
하반기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못할 경우 세수입 여건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수출입 부진, 소비부진, 소득저하 등 나빠진 경기지표는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등 주요 세목의 세수입을 크게 떨어뜨릴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지난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 업무보고를 통해 "대외 여건 악화와 소비 위축으로 세수여건이 녹록치 않다"며 "하반기에도 강도높은 세수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조사하면 다나와"는 농담이 아니었다
정부는 작년말과 지난 6월말 올해 경제전망을 두차례 하향조정하면서도 세수입예산에는 변화를 주지 않았다. 경기가 어려워도 세수입은 목표만큼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실제로 2009년에도 위기 여파로 전체 세수입이 줄긴했지만 정부의 세입예산보다는 많은 세수가 거둬들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제성장과 세입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올해도 세입여건이 어렵지만 세수입 목표를 달성하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정부 자신감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국세청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자리잡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주 발간한 '세무조사 운영실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국세청은 세수진도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세무조사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6월과 9월 세수진도비에 따른 세무조사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세수진도비가 높을수록 세무조사 비율은 낮아지고, 세수진도비가 낮을수록 세무조사 비율은 높아졌다.
세수가 덜걷히고 있다고 판단되면 세무조사를 강하게 하고, 세수가 여유있을 때에는 세무조사 빈도나 강도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런 세수입 변동은 세무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노력세수'로 통한다. 노력하는 만큼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IMF 직후인 1998년에는 세무조사 건수가 높은 수준으로 보이다가 2000년에는 하락했고, 2004~5년에도 세무조사 건수가 상승하다가 2006~8년에는 다시 하락세를 보였다.
2007년 4174개 법인을 세무조사 했던 국세청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2008년에 2974개 법인에 대해서만 세무조사를 실시했지만, 경기침체로 세입여건이 나빠진 2009년에는 3867개, 2010년에는 4430개 법인으로 세무조사 대상을 확대했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상반기 연간 세수진도비 목표에 많이 미달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세무조사가 심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도 "경기가 어려울 때 오히려 세금을 더 거두려고 하니 기업들로서는 맞은데 또 맞는 격"이라고 토로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세수여건이 좋을 때는 징세노력을 완화하고, 세수여건이 좋지 않을 때는 징세노력을 강화하는 경향이 확인됐다"며 "과세당국의 이런 행태는 재정의 경기 안정화 기능을 약화시키고, 세입의 자동안정화 기능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