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고재인·명정선·차현정·임효정기자]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사회구조가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연금시스템에 의한 노후 소득 보장기능은 절대적으로 미흡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고령화 속도 세계1위인 우리나라에서 노인 2명중 1명(노인 빈곤율 45%)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도 공개됐다.
문제는 노후 대비 연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와 민간 모두 중장기적인 역할분담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한 마디로, 노후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초고령사회에서 노후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재정부담은 정부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층적 노후 소득보장체계 구축 절실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한 뒤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기초 연금만으로는 노후 소득 보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사적연금 시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 연 400만원인 연금보험료에 대한 소득공제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400만~600만원은 50%, 600만~800만원 25% 등으로 세제공제에 차등을 두는 방식이 한 예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적연금을 어떻게 활성화해서 공적연금을 보완하느냐가 문제”라며 “세제혜택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하고,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제고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83%으로 은퇴 후 유동화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 구조를 고려할 때 실물자산을 유동화시키는 방안 등을 통한 노후 소득 보장도 중요한 방법이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들은 선진국과 달리 금융자산 비중이 낮고 부동산 등 실물자산 비중이 절대적이다.KB금융지주연구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총자산 3억7000만원 가운데 83%인 3억1000만원은 부동산자산이었다. 실제 금융자산은 4800만원에 그쳤다.
이런 자산구조에서는 스스로 노후 생활을 대비하기 어렵다.
문혜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인가구의 자산을 유동화 시켜서 안정된 노후생활을 위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는 역모기지 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금과 자본시장 선순환 구조 만들어야
은퇴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연금과 자본시장의 선순환구조 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자본시장 입장에서 연금은 장기자산이다. 특히 퇴직연금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자본시장 투자자 40%는 퇴직연금을 따라 들어온 경우다. 퇴직연금이 자본시장과의 연결고리가 돼 투자경로를 만들어 준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경우 여전히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규모가 미미한데다 단기에 빠지는 ‘뜨내기’ 자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결국 자본시장이 공감하는 은퇴시장 활성화를 이끌기 위해선 정부 유인책이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실장은 “정부가 앞장서 국민들이 은퇴 이후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에 나서야 한다”며 “대국민 ‘관심 끌어모으기’ 일환으로 공영방송을 통한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프로그램에서 집중 조명한다면 전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미국 근로자 퇴직연금제도 ‘401K’와 같은 개인·정부 공동 컨트리뷰션 플랜도 제안했다.
손 실장은 “세제도 '떡고물'이 될 수 있겠으나 그보다 강력한 것은 매칭 컨트리뷰션”이라며 “개인과 정부가 공동으로 펀딩하는, 즉 개인이 5만원을 컨트리뷰션하면 정부도 똑같이 5만원을 매칭해주는 것이다. 다만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기간은 짧게 두고 최소 10년 이상 유지한다는 조건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공적연금 사각지대 줄이고 사적연금 세제혜택 늘려야
전문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노후에 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10년 국민연금 가입자 2000만명 가운데 약 500만명이 보험료를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납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5명 중 1명이 사회보장제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55세 이상 중고령자의 70% 이상은 공적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해주고 있는 직장인들과 달리 본인이 100% 부담해야 해 향후 사각지대에 놓일 확률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들을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보험료 지원이다. 당장 정부 부담이 증가하는 문제는 있지만 향후 저소득층의 노후빈곤에 소요될 정부 부담을 감안하면 보험료 지원이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선우덕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보험료 지원으로 가입기간을 유지하거나, 최소 가입기간만 충족시키는 기초연금제도로 노후의 일정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안을 통해 제도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준낮은 관리감독..별도 연금시장 관리기관 설치해야
금융당국의 감독수준도 한층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금융소비자를 위한 규제 강화와 함께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등이 적절하게 이뤄져야한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퇴직연금 시장 출발이 늦은만큼 감독인원도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퇴직연금 정책을 맡은 금융위원회에서는 자산운용과 사무관 1명이 퇴직연금 업무를 맡고 있는데 퇴직연금 뿐만 아니라 자산운용 정책제도, 금융투자업인가 등록 등의 업무까지 함께 맡고 있는 상황이다.
실무적인 감독을 맡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경우 복합금융감독국 아래 연금팀 5명이 퇴직연금시장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연금 관련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경우 노동부산하 종업원급여보장청에서 특화돼 900여명이 연금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영국도 연금감독청을 따로 두고 340명의 인원이 업무를 분장하고 있다.
홍콩도 기업연금감독청에서 492명이나 되는 인원이 별도로 연금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연금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시장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감독방향은 규제완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지만 연금시장에 대한 감독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은 연금감독기관이 따로 있는 곳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이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단계”라고 털어놨다.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국제연금감독기구(IOPS) 연차 총회를 내년 10월에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기로 하는 등 연금시장 감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연금시장 활성화를 위해 금융위원회에서 자산운용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으며 금감원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재정부에서는 퇴직자의 세부담을 낮추는 세제개편안을 통한 연금시장 지원안도 내놨다.
금융위 관계자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개정됨에 따라 예전에 미미했던 것에 대해 보완하고 새롭게 제도 도입하게 됐다”며 “시장은 굉장히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금융제도도 보완해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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