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성수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대선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보수본색을 확실히 드러냈다.
지난 7월 대선 출정식때부터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40대·중도층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 박 후보 뿐만 아니라 당내외에서도 공통된 인식이었다. 박 후보가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대선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후속 조치를 마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하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기존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의 결집을 강화하려는데 더욱 무게를 둔 모습이다.
최근 이슈에서 사라진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놓고 안보를 강조하며 우클릭하더니, 국민통합 광폭행보도 인혁당 사건과 정수장학회 문제에 가로막혀 흐지부지되었고, 그나마 이슈를 선점하며 대선 정국을 주도하던 경제민주화도 그 빛을 바래고 있어 박 후보의 대선 출마선언문이 사실상 '백지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근혜-김종인, '경제민주화' 사실상 결별
박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경제민주화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말 비상대책위원회 시절부터 함께해 온 두 사람이 수차례 갈등을 빚었지만 간신히 봉합되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 후보가 김 위원장과 선을 확실하게 그으면서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 2일 재벌의 순환출자 금지 등 국민행복추진위가 마련한 경제민주화 초안을 제출한 뒤 박 후보의 결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기존 순환출자분은 기업 자율에 맡기자'며 사실상 순환출자 금지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박 후보는 11일 오후 서울시내 모처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놓고 갈등을 빚은 김 위원장과 한 시간 가량의 비공개 회동을 갖고 의견을 교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는 이 자리에서 기존 순환출자 지분의 의결권 제한 문제, 대기업집단법 제정, 경제 사범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재벌 총수·주요임원 연봉 공개 등 경제민주화 핵심 공약 대부분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박 후보가 지난 7월 대선공약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경제민주화 선점효과가 반감된 것이다.
다만, 대선이 4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 위원장이 사퇴할 경우 박 후보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란 점에서 김 위원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은 김 위원장의 사퇴 가능성에 대해 "선거를 한 달 앞두고서 (사퇴를)하겠느냐"며 "다만 기존 재벌에 대해 구조개혁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순환출자 규제를 사실상 백지화하게 됨에 따라 원래 그 분의 의도와는 멀리 가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 역시 12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와의 결별설에 대해 "결별이 간단하겠는가"라면서 "입장은 다를 수 있는 것이지 항상 같은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말을 아꼈다.
이어 '박 후보에게 서운한 것이 있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서운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나는 그동안 내 입장을 다 얘기했는데.."라면서 "공약이라는 것은 후보가 결정을 하면 그게 대선 공약"이라며 즉답은 피했다.
◇朴, 광폭 통합행보도 올스톱?
야권 후보 간 단일화 합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모든 이슈를 흡수하면서 박 후보는 정국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다.
특히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보여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인 봉하마을 방문, 전태일재단 방문 시도, 김대중 대통령 묘소와 5.18국립묘지·4.19국립묘지 참배 등 '국민대통합 광폭행보'는 어느 순간 올스톱했다.
박 후보가 직접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는 등 대통합에 적극 나서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인혁당 사건과 정수장학회 논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국민대통합 리더'로서 국민에게 다가서는 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상돈 위원은 앞서 지난 7일 "박 후보의 대통합 행보가 9월에 중단돼 선거가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며 "새누리당이 야권 단일화 등에 제대로 대처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지역 구도가 그대로 있지만 이른바 부산·경남 지역 아성은 무너졌고 대구·경북도 세대에 따라서 지지세가 다른 걸 느끼고 있다"면서 "4.11 총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던 유권자 성향은 아무래도 야권 성향이 많다. 이런 중간층 마음을 잡아야 하는데 대통합 행보가 중단되고 나서 우리가 선거운동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홍준표 전 대표도 한 라디오에 출연, "(지금처럼) 밋밋한 대선으로 가선 아주 힘들게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박 후보의 파격적인 변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지난 4월 총선 승리를 예로 들며 이번 대선에서도 승리할 것임을 자신했다. 당내 한쪽에서 제기된 '대선 위기론'을 반박하면서 경제위기와 성장 강조 등을 통해 보수층 결집에 주력하는 현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새누리, 대북 강경모드 전환
오히려 박 후보는 NLL 이슈와 같은 안보공세를 강화하면서 대북 강경모드로 전환한 모습이다. 대선 선언문 당시의 태도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특히,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에 대한 공세가 대표적이다. 박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겨냥, "NLL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되는 세력에게 우리의 안전과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느냐"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는 지난 2002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담을 하는 등 줄곧 유화적인 대북관을 보여준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NLL 공세를 기점으로 강경한 자세로 돌아서면서 보수 본색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오히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회담록 공개를 요구하는 등 외교관례를 벗어난 요구를 한 것도 박 후보가 표명하고 있는 '신뢰'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다.
한편, 박 후보는 이날 '제3차 동북아 안보 심포지엄'에서 문 후보가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나선 것을 겨냥,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평화협정에 서명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라며 "평화의 환상에 빠져 잘못된 행동에 끌려다니면 평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평화마저 사라져버린다"고 거듭 비판했다.
대선을 불과 한달 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박 후보가 야권에 흔들리고 있는 부산·경남(PK) 등 전통적인 고정지지층을 묶어 두기 위해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보여주었던 실용주의적이고 유연했던 정책을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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