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이르면 올해 말 선고되는
SK(003600)그룹 총수 일가의 재판 결과에 법조계와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최근 양형기준이 강화돼 기업 형사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더욱 엄격해진 만큼, 검찰의 공소사실이 받아들여지면 실형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최 회장 형제의 혐의를 입증했다는 데 주력하는 반면,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등 유리한 양형사유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2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SK 그룹의 형사사건 재판 결과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LIG그룹 경영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모자 등 대기업 재판에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루종일 '집중심리'..열달간 무려 36회 공판기일 열려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SK그룹 총수 일가의 재판은 지난 2월 세 차례의 공판준비기일을 거쳐, 3월부터 일주일에 한 차례씩 집중심리를 통해 진행됐다.
22일 열리는 결심공판까지 더하면 열달 간 무려 36회이 공판 기일이 열린 셈이다.
이달부터 진행된 최 회장 등 4명에 대한 피고인 신문만 3일에 걸쳐 진행됐다.
검찰과 변호인의 강도높은 신문 탓에 최 회장 형제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원범)의 재판은 오후 9시를 넘겨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번 재판에서는 최 회장이 '베넥스인베스트먼트로 SK그룹 계열사의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과정과 저축은행 대출금 횡령에 개입했는지 여부', '계열사 임원들에게 과다 지급된 상여금(IB)을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조성된 비자금 인식 여부'로 쟁점이 좁혀졌다.
그동안 검찰은 베넥스의 펀드 조성을 투자를 가장한 최 회장의 횡령이라고 주장했지만, 변호인 측은 '정상적인 투자'라고 맞서 법정에서 수 차례 날선 공방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준홍 베넥스 대표 등 공동 피고인·증인 진술 번복 '변수'
최 회장 형제의 재판은 증인의 진술이 거듭 번복되면서 난항을 겪었다.
재판 도중 함께 기소된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최 회장의 관여나 개입을 부정하는 등 검찰에서의 진술을 뒤집었기 때문에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앞서 김준홍 베넥스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해 "최 회장이 베넥스 펀드에 500억원을 투자하도록 계열사에 말해 돕겠다고 들었다는 작년 12월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2008년 10월 말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의 요청으로 이자를 받고 자금을 대여한 것일 뿐"이라며 "최 회장으로부터 펀드출자와 자금 선지급을 지시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선처해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궁박한 처지를 모면하려고 허위로 진술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SK텔레콤 상무 출신인 김 대표는 공모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최재원 부회장 역시 피고인 심문 과정에서 "김씨에게 보낸 펀드자금 450억원에 대해 모른다는 당초 검찰 진술은 사실이 아니다"며 "김씨의 투자제의를 받고 베넥스 김 대표를 통해 450억원을 송금했다"고 진술했다. 최 부회장은 "김 대표가 구속되자 공황장애에 빠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후 최 회장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두 번째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진술번복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검찰이 최 회장을 소환한 다음부터 김 대표와 최 부회장은 진술을 바꿨다"며 서로 말맞추기 한 것 아니냐며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횡령에 최 회장이 관여했다'는 김 대표의 검찰 진술이 무효가 되는 건 아니라서, 법원이 법정과 검찰 진술 중 무엇을 증거로 채택할지가 중요하다.
'진술의 신빙성' 인정 여부에 따라서 형량을 정하는 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 회장이 주도" vs "회장은 몰랐다"… SK, 최태원 구하기 성공?
최 회장 형제의 재판이 막바지로 치닫자 변호인 측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변호인 측은 혹여 최 회장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선고되도록 유리한 양형요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지난 1일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은 "SK그룹이 계열사 고위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추가 지급해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 사용한 대외활동비 139억 5000만원을 각 계열사에 변제했다"고 밝혔다.
이는 법원이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유죄의 심증을 갖을 경우, 양형 기준에서 형량의 감경요소 등으로 고려하는 '피해 회복 여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검찰은 이 돈은 회장 개인 자금 용도로 쓰였다며 횡령 혐의에 무게를 뒀지만, SK그룹 측은 "최 회장은 재무팀 등에서 마련한 자금의 출처를 전혀 몰랐고, 그룹 경조사와 직원 격려비 등으로 쓰기 위해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반납한 돈으로 비자금이 아니다. 당시 기업 관행이었다"는 입장이다.
이 외에도 SK그룹 측은 재판 초기부터 최 부회장을 공소사실의 전면에 내세웠다.
최 회장은 SK그룹 계열사들이 지난 2008년 베넥스 펀드에 투자한 자금 중 450억원이 김원홍씨에게 송금된 사실을 지난해 베넥스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기 전까지 알지 못했고, 뒤늦게 법무팀으로부터 보고받았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이다.
이는 최 부회장이 2차 검찰조사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4일 형인 최 회장을 직접 찾아가 450억원 불법 송금에 연루된 사실을 털어놨다는 법정 증언과 같은 취지다.
최 부회장 증언에 신빙성이 실린다면 최 회장의 횡령 혐의는 무죄로 결론날수도 있다.
또 SK C&C 주식을 담보로 한 금융권 대출건 역시 변호인은 "최 부회장은 김원홍씨에게 투자할 자본금이 없어 고민하던 중, 형에게 빌려달라 하게 되고 최 회장은 최 부회장의 유산상속 포기에 따른 마음의 빚 때문에 주식 담보를 허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최 부회장으로서는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없지만, 그룹 총수인 최 회장이 7년 만에 재차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예상되는 기업위기는 모면할 수 있게 된다.
또 횡령 혐의로 최 회장과 함께 기소된 김준홍 대표 등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최 회장의 관여나 개입을 부정하는 진술을 함에 따라, 법원으로서는 '심경의 변화나 진술을 뒤집은 시점, 객관적 정황 ' 등을 따져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기업 총수들에 대한 양형이유로 꼽혀온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도 재계의 관심대상이다.
재판부는 증거기록과 법리 검토 여부를 거쳐 이르면 올해 말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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