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KAI를 한단계 더 성장시키겠다는 매각의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실질적인 주인찾기에 정성을 쏟기보다 이 정권이 끝나기 전에 매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 허겁지겁 매각이 추진되고 있어 그 배경에 의혹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항공산업과 방위산업이 포함된 KAI의 업무 특성상 매각작업은 혜안(慧眼)을 가지고 큰틀에서 심도있게 논의해야 할 중요한 사안임에도 `수의계약`까지 들먹이며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하는 이유를 놓고 증권가에서도 각종 루머가 쏟아지는 등 상황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KAI 매각, 끊이지 않는 잡음.."주인찾기냐, 몰아주기냐"
급기야 정책금융공사가 28일 KAI에 대한 본입찰을 다음달 17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하면서 현정권 정책당국자들이 책임을 지고 매각을 밀어붙이긴 힘들 전망인만큼 사실상 KAI 매각은 차기정권에서 재추진될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초 정책금융공사가 내세우고 있는 KAI 지분매각의 가장 큰 목적은 책임있는 새주인을 찾겠다는 것이다. KAI가 한 단계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지배주주를 통한 투자가 있어야 도약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배동근 정책금융공사 자산관리부 팀장은 "KAI는 현재 지분 분할이 돼 있어 지배주주가 없는 상황"이라며 "확실한 주인이 있어야 투자가 일어나고 회사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KAI를 확실하게 책임경영할 수 있는 정확한 주인을 찾는 것이 이번 매각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KAI 매각과정을 살펴보면 정책금융공사의 이러한 설명은 모순된다. 특히 대기업 특혜 의혹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분매각의 본래 목적과 방향이 다르게 가고 있다는 뜻임을 정책당국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KAI는 국내 유일의 항공방위산업체로서 안보 측면에서도 민간기업에 대한 매각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말그대로 정확한 주인이 아닌 이상 무리한 매각은 여러가지 역효과가 날 수 있어서다.
이종택 KAI 노조사무국장은 "항공산업의 특성상 투자후 회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현재의 KAI의 상황에서 투자여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급하게 민간에 팔아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어 이 사무국장은 "설령 정말 엉뚱한 주인을 만나 인수가 이뤄진다면 두 회사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 "헐값에 먹는데만 급급", 현대중공업 "전정성 없어보여"
하지만 이들 기업이 항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KAI 인수자로서의 적격성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하다. 대한항공의 경우 '높은 부채율'이 문제가 되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인수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대한항공의 경우 800%가 넘은 부채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KAI 인수자금과 부산·경남 사천 지역의 투자금 등 모두 4조5000억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이 외자를 유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KAI는 주요 방위사업체로 정부로부터 철저히 보호받고 잇는 기업으로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취득율이 10%를 넘을 수 없다. 대한항공이 외자를 통해 KAI 유치에 나선다면 국가의 주요 방위사업 등이 외국기업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비슷한 사례로 아르헨티나의 AMC사(社)가 있다. AMC는 항공기 자체엔진을 생산할 정도로 잘나갔으나 WJD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미국의 록히드마틴에 인수되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항공산업의 재건과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결국 AMC를 다시 국유화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무리하게 자금을 마련하면 지금의 부채비율이 더욱 높아져 결과적으로는 이자를 막는데 급급해지면서 순이익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대한항공은 지난 1999년 삼성, 현대, 대우 등이 참여한 국내항공사 통합때 국내 방산사업은 참여하지 않고 민수사업만 영위한다며 KAI인수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누적적자 1700여억원에 달하며 어려움에 처한 KAI는 눈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대한항공은 2003년 KAI의 헐값 인수를 추진했으나 당시 KAI 지분매각에 관여했던 산업자원부 간부가 구속되면서 실패한다. 이후 2005년과 2009년에도 KAI 인수의 의지를 보였으나 모두 헐값으로 사들이겠다는 의욕 때문에 일을 망치고 만다.
◇KAI "죽쒀서 개주는 꼴" 강력반발
KAI 노조관계자는 "대한항공은 이번에도 KAI를 어떻게 살리겠다는 의지보다는 그저 싼값에 사들이겠다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며 "가격이 비싸고 사들여서 키워보겠다는 의욕은 한톨도 보이지 않는 등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대한항공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KAI 내부에서 `엉뚱한 주인`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대한항공에 대한 KAI직원들의 반감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
증권사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KAI 입찰에 참여한 뒤 기관에서 KAI주식에 대한 대량의 공매도가 나왔는데 대한항공의 자문사인 매릴린치의 주도로 이뤄진 것 같다"며 "어떤 의도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KAI 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AI 노조 관계자는 "매릴린치가 KAI의 주가를 3만원대 아래로 잡아두기 위해 대량의 공매도 물량을 쏟아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그동안 대한항공이 보여왔던 행태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도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그동안의 M&A에서 '치고 빠지는 식'의 움직임을 자주 보였기 때문.
특히 대한항공만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이번 입찰에서도 막판 가까스로 참여하면서 유찰을 막기 위한 들러리가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번에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KAI 실사에 대한 외부 자문사로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법률자문사로 김앤장 등을 선정하고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더구나 이번 실사기간의 연장을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이란 점은 기존 M&A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 시장의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들러리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런 생각으로 입찰에 참여했다면 맥킨지나 김앤장 등을 자문단으로 구성하지도 않았다"며 "성실하게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고 모든 판단은 매각 주관사에 맡길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매각작업이 본격화되면서 KAI 임직원들의 허탈감과 상실감은 크다. 회사가 적자의 늪에서 허덕일때 고강도 구조조정과 임금동결 등 제살을 깎는 어려움을 모두 견디며 지금의 알짜 기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KAI의 한 직원은 "한 마디로 죽쒀서 개주는 꼴이 됐다"며 "우리가 어려운 시절 다 겪고 이만큼 키웠는데 남한테 헐값으로 준다는 게 말이되냐"고 하소연했다.
한편, KAI 매각 주관사인 정책금융공사는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의 기간연장 요청을 수용해 예비실사는 다음달 7일, 본입찰은 같은달 17일로 각각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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