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식적으로 출범한지 꼭 32년, 1945년 역사적 시초인 특별검사청을 뿌리로 보면 67년 만이다.
마지막 중수부장인 김경수 현 대전고검장까지 그간 총 31명의 검사가 중수부장을 역임했다. 검찰총장만 6명이 나왔으며, 장관이 5명 나왔다. 대법관과 국회의원으로 출세한 사람들도 있다.
검찰 최고 실세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사 대상도 거물급이 많았다. 비자금 사건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중수부에서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대기업 총수들 중에도 중수부를 거쳐간 사람이 적지 않다. 분식회계 혐의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수사를 받았고, 1000억대 횡령 사건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기소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가 구속수사를 받았으며, 지난 정권 실세이자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도 중수부를 거쳐 법정에 섰다.
중수부는 최근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저축은행 비리 수사로 서민형 범죄 엄단에 나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말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면서 '정치검사의 아이콘'으로도 불리우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2008년에는 강압적인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불렀다는 뼈아픈 비판도 받았다.
중수부의 주요 수사 사건을 연도별로 정리했다.
◇1960년대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1966년)
삼성이 조직적으로 사카린 밀수사건에 관여한 사건으로 정부기관과 일선 검찰도 개입했던 사건이다.
삼성이 경남 울산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원료 58톤을 일본으로부터 밀수입한 사실이 부산세관에 적발됐다. 그러나 벌금 2000만원 통고처분으로 축소처리되고 ‘전국밀수합동수사반’이 대검에 보고하지 않은 채 종결했으나 나중에 비리가 드러났다.
사건을 재수사한 대검특별수사반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 한국비료상무 등 2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법률위반죄 등으로 구속하는 등 총 3명을 입건해 기소했다.
◇1970년대
▶박영복 금융부정대출 사건 (1974년)
금융권 핵심인사와 국가 권력기관이 관여된 최초의 조직적 금융범죄다. 금융감독원 고발로 대검 특별수사부가 수사했다.
박영복 금록통상주식회사 대표가 위조신용장 등을 이용해 시중 8개 은행으로부터 30억원의 불법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당시 중소기업은행장이 박씨와 함께 기소됐으며, 서울은행장 등 금융계 거물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거나 물러났다.
▶여수지구 밀수조직범죄 적발 사건 (1975년)
경찰서장과 세관장이 개입된 여수항 밀수조직 사건이다. 대검 특별수사부가 수사해 여수경찰서장 서모씨와 여수 세관장 안 모씨 등 총 172명을 구속기소했다.
◇1980년대
▶이철희,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1982년)
대통령의 친인척, 금융권 핵심인사가 개입된 우리나라 금융거래상 최대 규모 어음 사기 사건이다. 대검 중수부 창설 이후 중수부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알린 사건이기도 하다.
중수부는 이철희, 장영자 부부가 어음 2624억 원 상당을 시중에서 할인해 편취한 범행을 적발하면서 당시 대통령 부인의 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전 조흥은행장 임모씨 등 전직 은행장 2명 등도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예?적금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의 폐지와 금융실명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명성그룹 사건 (1982년)
금융부정·세금포탈·뇌물 공여 및 수수 혐의로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명성그룹 간부·은행원·공무원 등이 무더기로 구속된 사건이다.
이철희·장영자사건, 영동개발진흥사건과 함께 5공시절 3대 대형금융부정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 고위 관료, 금융권 인사의 금융부정, 세금포탈, 뇌물공여 및 수수 등 각종 비리가 드러났으나 그룹 해체 후 한화에서 헐값에 인수하면서 또 다른 특혜시비가 일었다. 김 회장에게 1000억여원을 변칙 대출해 준 상업은행 혜화동 지점 대리 김동겸 등 총 21명이 구속기소됐다.
▶조흥은행 어음부정지급보증 사건 (1983년)
조흥은행 은행장 등 금융권 고위간부가 관여한 대규모 금융비리사건. 조흥은행이 영동개발진흥 등에 어음지급보증한도를 초과해 부정하게 1671억원의 어음을 지급보증한 사건이다. 이 시건으로 조흥은행장 이모씨, 영동진흥개발 이모 회장 등 28명이 배임수재,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사건 (1987-88년)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것을 당시 경찰이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건.
당시 고문에 참여했던 경찰관이 서울지검에 구속기소된 뒤 법정 양심선언으로 전모가 드러나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나섰다. 수사 과정에서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지시로 은폐한 것이 밝혀지면서 강 본부장 등 경찰간부들이 구속기소됐다.
◇1990년대
▶수서지구 택지 특별분양 사건 (1991년)
택지 분양 과정에서 한보그룹이 정관계 고위층에게 금품과 특혜를 제공한 사건. 수서지구 자연녹지 114필지를 매매한 후, 건설부에서 택지개발예정지구로 고시하여 택지특별공급이 불가능해지자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청와대 비서관, 국회의원 등에게 7억60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사건이다. 정 회장을 비롯해 관련자 9명이 구속 기소됐다.
▶율곡사업 관련 비리 사건 (1993년)
육군 전력 증강 사업과 관련해 업체 선정 과정에 관계 고위 인사들이 개입하여 뇌물을 수수한 사건. 탄약고시설공사 등과 관련해 뇌물을 수수한 이종구,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들을 포함해 5명이 구속 기소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1995년)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권력을 이용해 각종 사업상 편의를 봐주고, 재벌들로부터 4500억 원 상당을 헌납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 노 전 대통령과 뇌물을 공여한 재벌 총수 등 22명 입건되고, 3명이 구속 기소됐다. 포괄적 뇌물죄 법리를 처음으로 적용한 사건이다.
▶한보비리 사건 (1997년)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대출 편의 및 국정감사 편의 등을 위해 국회의원 등 유력 정치인들과 은행장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사건. 국회의원과 금융계 인사 10명을 구속 기소했으나 ‘몸통’이 아닌 ‘깃털’만 수사했다는 비난 등 축소 수사 의혹이 제기됐다..
▶김현철 비리 사건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기업인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해 세금을 포탈한 사건. 관련자 6명을 구속기소 했다. 이 사건으로 현철씨는 현직 대통령 아들로는 처음으로 구속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으나 국민의 정부에서 광복절 특사를 받고 풀려났다.
◇2000년대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2001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임직원 20여 명과 공인회계사 7명 등이 대우그룹 4개 계열사 들에 대한 재무제표상 총 41조 원을 분식회계하고 이를 근거로 사기 대출을 받은 사건. 역대 최대 규모 분식회계 사건으로 김 회장을 비롯해 관련자 8명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해외계좌 확인 등 난관에 부딪히면서 당시 일었던 구명로비 의혹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현대자동차그룹 횡령 및 배임 사건 (2006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비자금 1034억 원을 조성해 횡령한 사건. 정 회장 등 2명을 구속 기소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 회장은 상고를 포기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다.
▶박연차 사건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사업 편의 제공 및 세무조사 무마 명목 등으로 대대적인 정관계 로비와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건. 전직 국회의장, 청와대수석비서관, 국회의원, 경찰청장, 검사 등 총 21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강압적인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피의사실공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검찰수사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촉발했다. 중수부 폐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도화선이 됐다.
◇2010년대
▶부산저축은행 사건 (2011년)
부산저축은행이 6조315억원 규모의 불법대출을 비롯해 3조원대 분식회계와 112억원 위법배당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건. 금융 비리·기업 비리·권력형 비리·토착 비리가 모두 포함된 각종 비리의 종합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비·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감사위원,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42명 구속 기소, 34명 불구속 기소 등 총 76명이 기소됐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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