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학생이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조롱과 따돌림을 받아 자살한 경우라도 집단 괴롭힘이 중대한 수준 정도로까지 볼 수 없었다면 학교측에게 보호감독의무 위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자살 학생의 부모가 "학생 보호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부산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집단괴롭힘으로 학생이 자살한 경우, 학교의 교장이나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아 교사 등이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괴롭힘이 계속되고 그 결과 피해 학생이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 있었음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에는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른 상황에 대한 예견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집단괴롭힘의 내용이 그 정도까지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교사 등이 집단괴롭힘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피해 학생의 자살에 대한 예견이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교사 등이 집단괴롭힘 자체에 대한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자살의 결과에 대한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A군(사망 당시 15세)은 2009년 부산 모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는데 옅은 화장을 하고 여자 목소리로 말하는 등 동성애적 성격이 강해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조롱과 따돌림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반 친구들의 조롱과 따돌림은 지우개를 던지고 물건을 감추거나 '뚱녀'라고 놀리는 등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선도부원이었던 A군은 같은 반 친구로서 친하게 지내던 B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반 친구가 교실 베란다에서 소변을 본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얘기한 일이 있었는데 그 뒤 부터 A군이 느끼는 우울감과 친구들의 괴롭힘이 다소 심해졌다.
A군은 같은 해 9월 중순 자살을 암시하는 메모를 교실 책상위에 남겨두면서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반 친구들 중 일부를 죽여주겠다고 밝히는 등 우울감 정도가 심해지다가 한달 뒤 교실에서 지나다가 부딪힌 일로 B군에게 얼굴을 맞은 후에는 가출을 하기도 했다.
A군의 담임교사는 A군이 학교에서 실시하는 정신건강에 대한 조사 등에서 우울감과 자살충동, 불안감이 많다는 결과가 나온 사실을 알게된 뒤 A군과 지속적으로 상담하는 한편 A군의 부모들과 상담하면서 A군을 남녀공학인 다른 학교로 전학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A군의 부모는 "왕따 가해자들은 가만히 두고 아들을 전학시키려 한다"며 거부했고, 결국 학교와 부모가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고 결론을 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러는 사이 A군은 같은해 11월 말 가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집 지하실에서 허리띠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A군의 부모는 A군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며 B군과 함께 A군이 메모 등을 통해 이름을 밝힌 같은 반 친구 11명 및 담임교사를 경찰에 진정하는 한편 B군과 부산시를 상대로 2억6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담임교사가 적극적인 사태해결을 하지 않은 채 A군의 전학을 권고하는 등 소극적인 조치로 일관해 학생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담임교사의 사용자인 부산시에게 A군의 부모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단, A군으로서도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상담하거나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과 부모들로서도 A군이 터놓고 얘기할만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지 못해 A군이 자살에 이르게 된 일부 책임이 있다며 부산시의 책임을 30%로 제한하면서 1억1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B군에 대해서는 A군이 따돌림으로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면서도 폭행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B군은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부산시와 부모들은 서로 항소했고 2심 재판부 역시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리자 부산시가 상고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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