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헌재 25주년 기념사
2013-09-02 10:57:22 2013-09-02 11:00:55
존경하는 전임 헌법재판소장님과 재판관님들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동료 재판관을 비롯한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
 
헌법재판소가 1987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1988년 9월 1일에 창설된 지 이제 2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호하고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왔습니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무시되었던 위헌심사 기능을 실질화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던 법률들에 대하여 과감하게 많은 위헌 결정을 해 왔습니다.
 
민주주의의 기초인 표현의 자유를 보다 철저히 보장하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남성위주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대우에 대한 헌법심사를 통해,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습니다.
 
법률이 없으면 형벌이나 세금도 없다는 죄형법정주의와 조세법률주의를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선언하였습니다. 형사절차를 비롯한 모든 공권력은 적법하고도 정당한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함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아울러 대통령 탄핵심판과 행정수도 이전 등 국민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뉜 사안들에서는,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갈등을 종국적으로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과거 헌법전 속에 문자로만 존재하였던 기본권 규정이 실질적인 국가 운영의 최고원리가 되었고, 헌법은 살아 숨쉬는 국민들의 생활규범이자 모든 국가행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헌법재판소는 명실상부한 헌법의 수호자가 되었고, 세계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국제적으로도 가장 모범적인 헌법재판기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헌법재판 활성화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처음 설립될 당시 우리나라의 헌법재판 경험은 일천하였고, 인력과 예산 등 모든 면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헌법재판소가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짧은 시간 내에 오랜 헌법재판 전통을 가진 나라들의 경험을 슬기롭게 소화하고,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새로운 기틀을 닦아 오신 역대 헌법재판소장님을 비롯한 재판관님들의 지혜와 각고의 노력에 힘입은 것입니다.
 
헌법이론과 재판에 대해 수준 높은 연구 성과를 쌓아 뒷받침해 주신 여러 헌법학자들의 노력도 적지 않았습니다.
또 우수한 인력을 지원해 주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해 준 여러 국가기관들과, 헌법연구관을 비롯한 헌법재판소 모든 구성원들의 노고도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성과의 바탕에는 헌법재판소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가슴으로부터 아껴주시고 신뢰해 주신 국민 여러분이 계셨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우리 헌법재판소가 그동안 이루었던 성과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고, 자기성찰을 통해 다음 사반세기를 준비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헌법재판소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와 비교하여 보면, 민간의 영역이 대폭 확장되었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자율적이고 개성 있는 시민들이 각자 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민주화, 노동, 교육, 연금, 환경 등 여러 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표출되고, 이념 대립과 부의 양극화 등 갈등의 요소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더 나아가 우리 헌법재판소에 사회경제적 영역에서의 기본권을 더욱 충실히 보장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는 데 노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하며 진정한 국가와 사회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헌법재판소가 앞장서서 합리적 토론과 소통을 위한 ‘공론의 장’을 제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스스로 승복하고 수용하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국민이 원하는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규칙을 보장하고,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인간다운 삶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며, 기회의 평등과 교육의 균등이라는 헌법원칙을 더욱 확고하게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단순히 헌법과 법률의 기술적 해석을 통해 형식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갈등의 뿌리 깊은 원인이 내포한 헌법적 쟁점을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갈등 해소를 넘어 미래의 가치와 방향 설정까지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헌법이 규정한 국가의 사명입니다. 자랑스러운 통일조국은 우리가 미리 준비하는 경우에만 신속하고도 순조롭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헌법재판소는 남북관계의 변화 과정과 통일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헌법문제와 헌법질서를 미리 연구하고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통일을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헌법재판소 구성원 여러분!
 
헌법재판소 25년의 역사는 곧 한국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헌법재판소는 오직 헌법에 충실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며, 합리적 토론과 소통을 통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앞으로 다가올 다음 50주년 기념일에는,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한층 더 심화되고 번영하는 통일 대한민국의 융성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끝으로 헌법재판소의 빛나는 역사를 가능하게 해 주신 국민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모든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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