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올해 국정감사는 재계 의지와는 무관하게 기업인들의 '장'이 될 전망이다.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경제민주화가 여전히 시대적 과제로 자리하고 있는 터라 기업인들에 대한 증인 채택이 역대 최대 규모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8일 국회와 재계에 따르면 각 상임위원회는 국정감사에 출석할 증인과 참고인을 하나둘 확정에 들어갔다. 여야 간 속내는 다르지만 이참에 재계를 손봐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는 한편 재벌그룹들의 투자 확대와 상생 강화 등 실리도 챙길 것으로 기대하는 표정이다.
경제민주화 이슈를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민심의 향방도 달라질 것으로 보여 여야 간 사투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도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무기로 중도층의 표심을 잡은 바 있어 쉽게 물러설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경우 초기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당연히 재계는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장기화된 대내외 경기침체로 경영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권이 재계를 정략적 목적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해 벌써부터 불만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일부 재벌그룹들은 대관팀을 총동원, 방어전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기업인 증인 채택 역대 최고 '전망'
오는 14일부터 11월2일까지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이번 국감에서는 기업인들에 대한 줄소환이 예고됐다. 지난해 19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채택된 기업인 증인은 145명으로,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이마저 경신,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갑을 관행, 대·중소 상생 등 경제민주화 관련 이슈들을 필두로 통상임금, 4대강 담합, 동양그룹 사태, 불산 사고 등 기업 관련 이슈가 다양한 데다 주요그룹 총수들의 모럴 헤저드에 대한 질타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스토마토)
환경노동위원회는 불산 사태로 곤혹을 치른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을 포함해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배정태 해태음료 대표, 윤갑한 현대차 사장,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 등 19명의 기업인이 포함됐다.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도 해명 대상이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허인철
이마트(139480) 대표이사,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 김성환
신세계푸드(031440) 대표이사 등 유통업 거물 25명을 증인으로 채택됐다. 경제민주화를 촉발시킨 골목상권 침해 등 유통 괴물에 대한 제동이 과제로 떠올랐다.
◇재계, 불만 고조.."국감 아닌 기업감사"
당연히 기업들의 불만도 뒤따르고 있다. 국감의 본래 취지인 '정책 감사'가 아닌 '기업 감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게 주된 주장. 재벌 길들이기를 통한 정략적 이해 수단으로 국감장이 퇴색된 것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경영차총협회는 지난 6일 공식 성명을 통해 "국감 증인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가기관의 기관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 기업인 증인 채택은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뚜렷한 명분 없이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불러놓고 일방적으로 말을 끊거나 윽박·면박을 통해 국회의원 '면 세우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너도나도 기업인 증인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그 과정에서 일부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의 경우 기업에 무언가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해도 해 질 때까지 질문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면 관련 내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숙지하는 등 기업에서는 비상 모드에 돌입한다"며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면 왜 불렀는지 모를 정도로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소실을 우려하고 있다. 경총은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환경 속에서 촌각을 다퉈야 하는 기업 대표들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경영에 전념할 수 없어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고 무분별한 증인 채택 자제를 촉구했다.
◇"출석하고서 불만 표해야".."일각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국회도 할 말은 있다. 기업인들이 증인 채택 때 제대로 응하기나 하고 불만을 표하라는 것이다. 실제 매해 국감 때마다 기업인들은 해외출장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을 기피해 여론의 표적이 됐다. "오죽하면 '법 위에 군림한다'는 지적이 나왔겠느냐"는 게 여야 표정.
실제 지난해에는 정무위 국감이 증인 불출석으로 파행되는 난항을 겪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 및 이마트 대표,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전원 불참했다.
해외출장 등 사업상 일정 소화, 건강 문제 등 불참 이유도 다양했다. 심지어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 기업인도 있었다. 당시 정무위는 격노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권위를 모독했다는 모욕죄로 몰아붙였다. 결국 정무위는 청문회에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한 기업인들을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법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국감에 불출석한 기업인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4월 재판부는 신동빈 회장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에는 벌금형으로 끝나지만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 최대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경고했다.
반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15년 이상 국감을 해 본 경험에서 말한다"면서 "국회의 의례적인 권위를 뽐낼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증인 채택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그는 "증인으로 불러놓고 하루 종일 말 한미디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며 "기업인 증인 채택은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고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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