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STX그룹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3월 STX그룹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지 8개월 만에 각 계열사들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비롯해 법정관리, 매각 등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이 과정에서 조선과 해운, 건설을 주요사업으로 영위하며 한때 재계 서열 12위까지 올랐던 STX그룹은 STX조선해양을 중심으로 한 조선그룹으로 규모가 축소됐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강덕수 회장은 주요 계열사 수장자리에서 퇴진했고, 그룹은 해체돼 뿔뿔이 흩어졌다.
◇STX그룹 서울 남산 사옥 전경(사진=STX)
가장 먼저 구조조정에 들어간 곳은 STX조선해양이다.
주요 계열사 중 회생 가능성을 가장 높게 평가받은 데다, 핵심사업인 조선업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 품에 가장 먼저 안겼다.
채권단으로부터 STX조선해양을 중심으로 STX엔진과 STX중공업, 포스텍을 아우르는 이른바 STX조선그룹 경영정상화 방침이 정해지자 곧바로 3조원대의 자금지원 계획도 마련됐다.
동시에 STX조선해양이 그룹 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 때문에 강덕수 회장이 가장 먼저 대표자리를 내놓은 계열사이기도 했다.
채권단 관리 하에 들어간 이상 강 회장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야 조속한 경영정상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채권단은 진해조선소장이었던 류정형 부사장을 신임 대표에 선임했다.
지난달 취임한 류 신임대표는 일반상선과 특수선에 집중키로 향후 경영 방향을 정하고 조직 및 인력 개편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순간이었다.
STX엔진과 STX중공업은 나름의 수익구조를 갖추고 부실도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순조롭게 경영정상화 과정을 거쳤지만 포스텍은 달랐다. 포스텍은 STX 지배구조의 옥상옥에 있는 실질적인 지주사 격으로, 강 회장의 지분이 87%에 달해 개인회사로 불렸다.
또 포스텍이 연간 매출의 절반 이상을 STX그룹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채권단 입장에서는 걸림돌이 됐다. 강 회장이 STX조선해양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이상 포스텍과 더 이상 거래를 유지할 이유 또한 없다는 판단도 깔렸다.
하지만 오히려 STX그룹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결국 포스텍 회생에 도움이 됐다. 포스텍이 STX조선해양에 선재를 납품하고 그룹 물류도 담당하고 있어 STX조선해양의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포스텍을 죽일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다만 포스텍의 자율협약 조건으로 대주주인 강 회장 지분의 감자와 출자전환이 제시됐다. 회사는 살리되 경영권은 채권단이 갖겠다는 조건이었다. 현재 감자와 출자전환이 완료됐으며, 계획대로 채권단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팬오션과 STX건설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회생 계획을 인가받았다.
지난 4월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건설은 오는 2015년까지 담보 채무를 모두 현금으로 갚고, 무담보 채무 중 79.5%는 출자 전환, 나머지 20.5%는 현금으로 변제키로 했다. 또 감자를 통해 발행 주식수와 자본금은 현재의 절반 수준인 302만5298주, 151억2649만원으로 줄게 된다.
STX팬오션은 최근 사명을 STX팬오션에서 '팬오션'으로 바꾸는 내용이 포함된 정관 변경안과 감자, 출자전환 등 회생계획안을 법원에서 승인받았다.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STX팬오션은 오는 29일 1차 감자에 이어 다음달 13일과 27일 각각 유상증자를 통한 출자전환과 2차 감자를 진행한다. 2차 감자까지 완료되면 STX그룹이 보유하는 STX팬오션의 지분은 5% 미만으로 떨어지고,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약 13%의 지분으로 최대주주로 올라설 전망이다.
지주사인 STX는 자율협약체결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지난 27일 세 차례에 걸친 사채권자집회에서 출자전환 안건이 부결되면서 채권단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앞서 채권단은 사채권자들의 채권만기 연장 및 이율 조정 등의 고통 분담을 전제로 '조건부 정상화' 방안에 동의한 바 있다. STX의 비협약채권은 총 2932억원 규모다.
이로 인해 앞서 STX건설이나 STX팬오션처럼 법정관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STX 측이 사채권자집회를 재추진한다고 밝히면서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닫히지는 않았다.
STX는 3주 후인 다음달 중순쯤 사채권자집회를 다시 열고 부결된 출자전환 건에 대한 동의를 반드시 받아낸다는 계획이다. 출자전환 안건이 통과될 경우 신규 비즈니스 모델 적합성 검토 등 정밀실사를 거쳐 자율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밖에 STX에너지는 일본계 금융그룹 오릭스에 매각된 후 새로운 주인찾기에 나선 상황이며 STX유럽, STX다롄 등 해외 계열사들도 채권단 주도의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채권단은 '조선만 살리고 나머지는 매각한다'는 당초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STX그룹을 조선 중심 기업으로 재편하고, 나머지 계열사는 매각을 통해 조선업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대규모 자본과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해양플랜트 대신 경험이 많은 전문분야인 상선과 특수선 사업에 집중하고 있고, 조선업 경기도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드는 등 여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이른 정상화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STX그룹은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지만 그룹의 명맥을 이을 조선업 전망은 낙관적이어서 STX그룹 초기처럼 조선을 바탕으로 한 그룹 재건이 가능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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