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50)는 16일 법정에서 "과거의 기억은 지나간 일이 아닌 현재"라면서 지난 20여년의 세월을 요약했다. 검찰은 강씨가 재심에서 증거를 조작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유죄를 주장했다.
강씨는 16일 서울고법 형사합의10부(재판장 권기훈) 심리로 열린 유서대필 사건 재심 결심공판에 출석해 최후변론을 통해 "20여년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났다. 잊으려고 했으나 헛된 노력이었다"며 체포되는 순간부터 교도소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기까지 시간을 되짚었다.
그는 당시 "검찰 강력부가 정치적이겠나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얼마나 순진했는지 당시를 생각하면 발등을 찍고 싶은 마음이다"며 "이 어리바리한 인생은 무엇인가"라고 자책했다.
이어 "과거 불행한 일로 치부하고 잊고 싶었던 1991년의 일은 망령처럼 삶을 압박했다. 처절하고 지옥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많은 이의 삶을 괴롭혔다"고 말했다.
그는 "'빨갱이 새끼는 빨리 죽어라'며 자신에게 악플을 단 네티즌은 당시 재판부보다 양심적인 사람"이라며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법원에 회람시켜 자신을 '선량한 사람을 기망하는 악마'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법정진술은 오늘로 끝이다. 이제 놓여나고 싶다. 저주하며 보낸 시간과 이별하고 싶다. 할만큼 하고 잘 견뎠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다. 국민의 자랑인 검찰이 조롱거리가 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며 법정에 있는 검사를 향해 조언했다.
이에 검찰은 "강씨가 재심에서 증거를 조작해 국민과 언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항소를 기각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재심의 계기가 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2007년 필적 감정이 공정성이 없으므로 증거로서 신빙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사설 감정인들간의 감정이 엇갈리고, 감정 판단을 하지 않은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김기설씨의 유족이 2002년 민주화운동보상금을 수령한 뒤 이를 도와준 전민련 측에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필적과 같다"는 취지의 종전 진술을 뒤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재심 진행 과정을 모르는 언론과 국민들은 국과수와 검찰, 사법부가 억울한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을 판결문에 상세히 적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변호인단은 이번 사건을 '진실과 허위', '정의와 불의',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로 규정하고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 측은 "2007년 진화위의 감정이 지난해 국과수의 감정과 일치하지만, 1991년 국과수 감정과 불일치한다"며 "이를 근간으로 이뤄진 검찰의 공소는 근간이 흔들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기설씨의 아버지가 보상금을 받은 이유로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은 우리의 윤리 감정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변호인단은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며 "이번 사건으로 권력의 검은 그림자가 거둬지고, 인내하며 진실을 지켜온 피고인에게 뜨거운 공감과 연대의 뜻으로 양심의 훈장을 수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씨의 재심 선고는 다음달 13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고(故)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하자 검찰이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에게 유서를 대신 쓰고 자살을 부추겼다며 기소하면서 불거졌다.
강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3년이 확정돼 만기 복역한 후 출소했고,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에 따라 2008년 재심을 청구했다.
(사진=뉴스토마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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