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최근 전북의 오리 농가를 시작으로 조류독감(AI)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의 농식품 안전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여름에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 유출에 안일하게 대비해 수산물 공포를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에 뒷북 대처하며 가금류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있어서다.
이번 AI사태도 이미 예고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철새 분변을 조사해 "AI관리에 주의할 것"을 밝힌 바 있는데도 안일하게 대처하다 오늘의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전북 고창군 오리 농가에서 발생한 AI 의심신고가 고병원성 AI로 확진된 이후 대형마트 등에서는 닭과 오리고기 매출이 빠르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139480)는 17일부터 19일 사이의 가금류 매출이 2주 전보다 10%가량 줄었고, 롯데마트도 닭과 오리고기 매출이 전주대비 18% 정도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동일본 원전에서 세슘 137과 스트론튬 90 등이 포함된 오염수가 유출된 사실이 알려진 후 대형마트 등에서는 명태와 갈치, 고등어 등의 매출이 전년보다 마이너스 10% 가까이 떨어졌다.
◇2013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에 따른 유통업체 수산물 매출(자료=산업통상자원부)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농식품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번지는 모습은 이번 AI 사태 역시 그때와 판박이다.
지난해 일본 방사능 오염수 유출 소식이 국내에 알려졌을 때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일본 해역에서 잡힌 수산물의 방사능 수치를 검사해 공개한 게 아니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회를 먹는 사진을 공개하며 무턱대고 수산물의 안전성 홍보하기였다.
정부는 11월에야 해양수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고등어와 갈치 등 15개 품목에 대한 방사능 안정성 조사결과를 공개하고 일본 원전 오염수의 이동로를 분석하며 국내 수산물에는 피해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미 어업인과 유통업체는 3개월~4개월에 걸쳐 수입이 감소하는 손해를 입은 뒤였다.
AI도 정부의 늑장대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질적인 병폐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철새 분변을 조사해 "AI 바이러스 검출률이 전년 상반기보다 11배나 높아졌다"며 "고병원성 위험성이 높은 H5형 바이러스가 10월 충남 아산에서 15건 검출돼 관계 기관과 사육농가에서 겨울철 AI 관리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당시는 중국 등에서 AI가 발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국내서도 AI가 발생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정부는 환경부의 발표에도 AI에 대한 대비책을 내놓지 않았다가 불과 한달 뒤 AI가 실제로 확진되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불끄기에 나서는 형국이다.
◇조류독감(AI) 발생지역과 확산지역ⓒNews1
농림부는 AI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지난 19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동중지 명령(Standstill)'을 발령하고 방역태세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했으며 의심신고가 접수된 지역을 중심으로 소독과 이동통제, 예방 살처분 등 각종 방역대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미 AI가 발생한지 3일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방역에 나선데다 빠르게 퍼지는 AI 특성상 정부의 느린 대처에 양계농가의 피해와 국민의 불만은 이만저만 아니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2010년 겨울에는 AI 바이러스가 무려 139일 동안 지속됐다"며 "이번에도 AI 지속기간이 길어지면 피해액은 2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설 대목을 놓치는 것은 물론 올여름까지 닭과 오리 소비가 줄어 손해가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도 "정부는 이번 AI가 H5N8 바이러스고 세계적으로 인체에 감염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인체에 해가 없더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독한 항생제를 맞은 닭과 오리를 태연하게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닭고기는 국내 소비량이 많은 식품인데 소비자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회복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우리나라가 AI 청정국이라는 사실에 안심할 게 아니라 예방대책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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