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발전의 기본인 회계관리제도 개선과 공명정대한 외부감사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계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시장의 발전과 건전한 투자문화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계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은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회계사는 기업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기업은 더이상 외부감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부감사인이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국내 회계투명성 실태를 진단한다. 또 기업·회계법인·금융당국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근본적인 개선방안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뉴스토마토 서유미기자] 요즘 한 회계사 단체는 업무 중 사망한 동료를 돕기 위해 조의금을 걷고 있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다. 지난 1월과 3월 조의금 모집에는 330명이 넘게 참여했다. 걷힌 돈만 1250만원 정도다.
조의금을 모은 청년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십시일반이라고, 작은 애도의 뜻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들 품고 있는 안타까운 뜻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회계사들이 동료 회계사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배경에는 과중한 업무와 잦은 야근이 있다. 지난 1월 안진회계법인에서 근무하던 30대 회계사가 출장지에서 사망했다. 유가족은 과로사라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한 회계법인의 이사직급 회계사가 뇌출혈로 유명을 달리했다. 회계사로 재직한지 10여년, 감사 과정에서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위치였다. 한 동료 회계사는 "갑작스런 두통은 아니었고 결산기에 과중한 업무로 인해 지속적으로 두통을 호소했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올해로 공인회계사회가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현재의 업무 환경은 회계품질을 올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대한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사진제공=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법인은 침몰하는 배”..고급인력 유출 잇따라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1분기는 회계사들에게 ‘시즌’으로 불린다. 기업의 실적 자료 작성이 마무리되는 1월 말부터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인 3월 말까지 감사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주총 일주일 전까지 감사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3월 초 주총 일정까지 고려하면 더 촉박해진다.
12월 결산법인은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전체 법인의 97%. 2013년 기업 실적을 기록하는 업무를 짧은 기간에 몰아서 하다보니 격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회계사들이 대부분이다.
대형 회계법인의 주니어급 회계사는 "시즌에는 주말까지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며 “일주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면시간이 2시간에 불과하다는 하소연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고급 인력이 회계법인을 떠나는 현상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중간 허리급 인력 부족으로 4대 회계법인은 지난 2011년과 2012년 사이 신입 공채를 대폭 늘렸다. 주니어 회계사가 중간 허리층으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인력 부족이 계속될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그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 우리들끼리 회계법인을 '침몰하는 배'라고 이야기한다”며 “인력들이 빠져나가면서 회계 법인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계투명성 수준 하위권..부실감사 의심건수 급증
이같은 고질적인 촉박한 일정과 부족한 인력은 감사 품질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의 회계투명성 수준은 7점 만점에 4.04점을 받아 미흡한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공인회계사의 점수는 상장회사 경영진이나 회계학계 인사들에 비해 현격히 낮았다. 기업 CEO들은 총 7점 만점에 5.11점으로 다소 높게 평가했지만 학계는 3.76점을, 공인회계사는 3.25점을 매겼다.
실제 감사보고서에서 규정에 맞지 않거나 부실 감사가 적발되는 비율도 높아졌다.
(자료제공=금융감독원)
금감원이 기업의 감사보고서를 무작위 추출해 감리한 결과, 지적율은 지난 2009년 2.1%에서 2013년 21.1%로 급격히 증가했다. 전체 회사 5개사 중 1개 회사는 감사보고서의 문제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현장에서는 국제회계기준(IFRS)도입으로 연결재무제표가 확대되면서 업무량은 늘었지만 회계법인이 받는 수임료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최진영 금감원 전문심의위원은 "연결감사 확대로 감사 투입 시간이 많이 늘었는데도 감사 보수는 비슷한 상황"이라며 "이는 우수 인력의 이탈과 감사시간 부족으로 이어져 감사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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