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 '역린'은 제작과정에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배우 현빈의 군 제대후 첫 복귀작인데다가 정재영, 조정석, 한지민, 김성령, 조재현 등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울러 MBC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재규 감독이 연출자로 참여하면서 '광해'와 '관상'을 이을 명품사극이 될 것으로 점쳐졌다.
이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시사회가 열렸던 지난 22일 오후 롯데시네마 건대입구는 취재진과 영화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역린'을 본 뒤 영화관을 빠져 나오는 사람들에게서는 실망감이 묻어났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많은 아쉬움을 준다.
'역린'은 정조 1년 왕을 암살하기 위해 살수들이 내시, 궁녀들과 손잡고 담을 넘었다는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삼았다.
정조와 정순왕후, 노론의 싸움이 주요 갈등을 이룬다. 권세를 잡은 노론과 맞선 정조의 이야기는 이미 수 많은 작품에서 무수히 다뤄져 왔다. '역린'은 전작들과 뚜렷한 차별점 없이 그 내용을 답습한다. 고독하고 외로웠던 정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역린'만의 뚜렷한 메시지도 없다.
◇이재규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비장함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도 어색한 부분이다.
감독의 첫 영화 도전이어서인지 너무 힘이 들어갔다. 비장함이 정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비춰지는 탓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실소가 나오게 한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다.
여백의 미도 부족했다. 드라마 PD 출신이라는 한계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시간이 넉넉한 드라마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영화는 시간의 제약이 크다. 인물과 상황 하나하나를 친절히 설명하다보니 영화가 지루하게 늘어진다. 팽팽한 긴장감은 초반부터 찾아보기 힘들다.
◇조정석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살수 역을 맡은 조정석의 연기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무게감을 줘야하는 살수 역할은 조정석에게 버거워 보인다. 몇몇 장면에서는 '건축학개론' 납득이의 잔상이 엿보인다. 그보다는 '더킹투하츠' 은시경의 이미지를 더 가져갔었다면 어땠을까.
이에 비해 현빈과 정재영, 조재현, 정은채는 안정된 연기를 펼친다. 정조를 택한 현빈은 어려울 법한 사극톤에 적응된 모습으로 두 시간을 이끈다. 외롭고 고독한 정조의 이미지를 살려내면서, '멜로에 특화된 배우'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연기력도 보여줬다.
◇현빈-정재영-정은채-조재현(왼쪽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상책 역의 정재영은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당초 미스캐스팅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안정감있는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살수를 키워내는 광백 역의 조재현 또한 폭넓은 연기 변신으로 영화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신예 정은채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반전의 키를 쥐고 있는 캐릭터를 신비스럽게 그려냈다. 김성령과의 맞대결신은 그의 향후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많은 아쉬움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현빈을 비롯한 배우들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즐거울 수도 있겠다. 반면 새로운 정조에 주목하고자 하는 관객에게는 그저 정조 1년의 긴 하루만 체험하게 될 것이다.
30일 개봉. 상영시간 1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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