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선박 충돌사고에서 선박 장비의 고장이나 승무원이 승선기준 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된 경우 감항성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로 계약시 이를 면책사유로 정했다면 해상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소송 진행을 앞둔 가운데 해상보험사의 책임 기준을 제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9일 2008년 발생한 여객선과 해군 군함 충돌사고와 관련해 국가가 한국해운조합을 상대로 낸 보험금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여객선이 출항 정지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는 기상상황에서 출항했고, 여객선에 설치된 레이더 역시 성능부족으로 3마일 이상을 탐지하기 어려워 군함을 발견했더라도 충돌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또 "충돌 직전 군함이 여객선을 발견하고 VHF 무선전화기를 이용하여 호출했으나 여객선에 설치된 VHF 무선전화기의 송신기능이 고장 나 군함과 교신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여객선 승선 선원 역시 선원법에 따른 승무정원에 포함된 갑판원이 없어 주변을 감시하거나 기적소리를 듣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그렇다면 여객선은 이미 충돌사건 당일 항해시에 감항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여객선 선사와 피고의 해상보험 계약에서 감항성을 담보조항으로 피고의 면책을 규정한 이상 피고에게 보험금 지급 책임은 없고, 같은 취지로 판결한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지난 2008년 7월8일 오전 10시19분 해군 오전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소속 441톤급 군함과 인천과 연평도 사이를 운행하는 653톤급 여객선 골든진도호가 인천 옹진군 초치도등대 부근에서 충돌했다.
당시 해상 기상 상태는 여객선이 출항할 때 안개로 시계가 0.5마일 정도에 불과했으며, 운항이 계속되면서 더 악화됐다.
여객선에 설치된 VHF 무선전화기는 이미 송신기능이 고장난 상태였으며 레이더 역시 노후 또는 고장으로 탐지거리를 3마일 이상으로 설정할 경우 사물을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선원법상 승무정원도 5명이지만 4명만이 승선해 갑판원을 배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장 이모씨는 이를 운항관리실이나 선사에 보고하지 않고 레이더 탐지거리를 0.25마일과 1.5마일로 설정해 둔 채 계속 항해했다.
군함은 진도호가 접근하는 것을 먼저 탐지하고 VHF 무선전화기로 진도호를 호출했으나 대답이 없었고, 싸이렌과 포그혼을 사용해 무중신호(霧中信號)를 보냈으나 진도호 선장은 충돌직전까지 군함이 앞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사고로 여객선 승객 27명과 군함 승무원 11명이 부상을 입었고 군함 우현 중앙부 갑판과 조타실, 함교 위의 발칸포가 손상됐다.
국가는 진도운수와 보험계약을 맺은 한국해운조합을 상대로 보험금 9억1000만원을 청구했으나 한국해운조합은 "보험계약시 면책사유로 정한 감항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로 보험금 지급책임이 없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레이더나 VHF 무선전화기의 고장 또는 노후 및 기준 이하의 승무원 승선이 사고 원인 중 일부인 점은 인정되지만 여객선이 운항시 감항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한국해운조합에게 보험금 3억7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일부 승소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여객선은 감항능력이 없었으며, 계약상 명시된 감항능력이라는 의미가 추상적이어서 무효라는 원고 주장 역시 이유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에 국가가 상고했다.
감항성 또는 감항능력이란 선박이 자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일정한 기상이나 항해조건에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성능이다.
대법원은 선박이 감항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항해의 구체적·개별적 사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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