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 달 넘게 병상에서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추이를 지켜봄과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히 마하의 속도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대비한 것으로, 이재용 체제의 개막과 맞물려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계열사 간 지분 교통정리에 이어 삼성SDS에 이어 삼성에버랜드마저 상장을 추진키로 하면서 지배구조 개편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개인 기준)로 있는 곳으로, 경영권 승계시 부담해야 할 상속세 마련의 돌파구로 인식된다. 특히 삼성에버랜드는 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사실상의 지주사로 향후 그룹 재편의 열쇠로 주목된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삼성 내부적으로는 지주사 전환이 실리가 적다며 부정적이다. 현 지배구조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영권 방어에는 자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결국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목적이 3세로의 경영권 승계 및 일가의 지배력 강화인 만큼 삼성이 경제적·도덕적으로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에버랜드 상장 신호탄..삼성전자홀딩스 탄생?
삼성SDS가 상장 계획을 밝힌 지 채 한 달도 안돼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추진 소식이 전해졌다. 증권가에서는 에버랜드가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상장을 결정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양사 모두 그간 끊임없는 상장설에 부인으로 일관해 갑작스런 선회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오진원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에버랜드의 지난해 지배순익이 452억원이고 올해 1회성을 제외한 경상순익은 1000억원 초·중반에 불과할 것"이라며 "KCC 지분 17% 등 비연고 기업의 지분 구성을 감안할 때 예상을 크게 앞서서 상장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삼성이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전자와 생명 지분을 승계했을 때 납부해야 하는 5조원 안팎의 상속세와 증여세를 충당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삼남매의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구주 매출은 최소화할 것이라는 상반된 예상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 내년까지만 적용되는 과세 특례도 에버랜드 상장을 서두른 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상 지주회사 설립 시 오는 2015년까지만 주식 현물출자나 교환으로 발생하는 양도세·법인세에 대한 과세 특례를 받을 수 있다.
이제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와 시선은 내년 1분기 에버랜드의 상장이 이뤄진 후 판이 어떻게 구성될 지에 쏠려 있다.
우선 삼성전자를 지주사인 홀딩스와 사업 자회사로 인적 분할해 현물 출자한 후 지주회사와 에버랜드를 합병해 거대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자료=KTB투자증권)
현재 삼성그룹은 금융과 산업 자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을 큰 축으로 지배구조를 이루고 있다. 금산분리 강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는 잠재적 위협 요인이다.
지주사 격인 에버랜드만 장악하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3.95% 밖에 안 되지만, 이 회장과 삼남매의 에버랜드 지분은 절반인 45.56%에 이른다.
재계 관계자는 "순환출자 구조는 다소 후진적이고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과 맞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기업 지배구조가 단순화됨에 따라 시장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강화 또한 지주사 전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다.
◇지주회사 현실성 낮다.."현 체제 유지할 것"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 시 여러 걸림돌이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돼야 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지주회사에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7.21%)과 삼성화재(1.26%)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 가치는 시가 기준으로 17조~18조원에 달한다. 시장에서 소화되기 어려운 규모다.
매수 주체가 나타난다 해도 지분 정리로 인한 삼성가의 지배력 약화가 수반되기 때문에 쉽사리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한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사진=삼성그룹)
삼성도 지주회사 설립이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무리한 작업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삼성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지분율을 확대할 경우 과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처럼 편법·불법 상속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지분을 상속 받았다고 해도 넘어야 할 난관이 있다. 삼남매가 지주회사를 안정적으로 지배하려면 40~50% 수준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산업·금융 등 업종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삼성생명 주축으로 중간지주회사 설립은?
한편 오래 전부터 삼성이 삼성생명을 주축으로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중간금융지주사는 일반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전제로 금융계열사 소유를 허용하되, 자본 이동을 막기 위해 금융계열사는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지배해야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의 경우 금융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 삼성의 경우 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보유하고 있는 전자 지분 7.21%를 모두 처분해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삼성 사옥(사진=뉴스토마토)
아울러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삼성그룹으로서는 삼성전자가 빠진 지배구조 개편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중간 금융지주회사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삼성 산업 계열사들의 지분 정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금융쪽은 상대적으로 뜸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달 초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이 각각 삼성자산운용과 삼성선물을 100% 자회사로 두기로 했다고 공시한 게 전부다.
재계 관계자는 "이 모든 시나리오는 결국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력 강화로 귀결된다"면서 "삼남매가 향후 분쟁이나 분열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판을 짜지 않을까 싶다"고 추측했다.
삼성 관계자 역시 "그룹을 쪼개서 삼남매에게 나누는 방안만 거론되고 있는데, 모두가 함께 하는 원 삼성도 유력한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에버랜드 지분구조처럼 이재용 부회장을 정점으로 이부진, 이서현 자매가 서로를 견제함과 동시에 이 부회장을 보완케 하는 각자 대표체제가 가능하다. 더 이상의 분열과 이로 인한 갈등은 용인치 않겠다는 의도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