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벼랑 끝에 몰린 팬택의 명운을 결정지을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동통신사들이 출자전환 여부를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현 상황이 무척이나 씁쓸하게 다가온다.
물론 팬택이 약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살리고 봐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시장 논리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자칫 부실경영이나 모럴해저드를 조장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심각한 재정난을 초래한 경영의 책임도 물어야 마땅하다.
다만 팬택이 벼랑 끝에 몰리게 된 과정을 들여다 보면 정부 역시 현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의 막무가내식 유통시장 개입으로 한때 벤처의 신화로까지 불렸던 토종기업이 산화하는 대표적 사례로 남을까 두렵다.
팬택은 잘못된 정부 정책과 이동통신사업 구조상의 희생양이 되도 좋을 만큼 의미 없는 기업이 아니다. 아이언은 애플도 구현하지 못했던 메탈링 디자인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선구자적 의미를 띈다. 삼성전자, LG전자보다 앞서 지문인식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인 사생활 보호를 시장의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자본싸움으로 변질된 마케팅의 절대적 부족함을 차별화로 채우려 했다. 시장에 적절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메기' 역할을 소화하기에 충분했다. '스카이'에 이어 '베가'에 이르기까지 나름 마니아층을 확보했고, 한때 국내시장에서 LG전자와 2위 다툼을 치열히 벌일 정도로 탄탄한 기술력을 갖췄다.
지난 2005년에는 마땅한 인수처가 없던 SK텔레텍을 전격 인수하면서 고용승계를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 SK그룹이 소버린의 공세로 경영권을 위협받을 때는 수차례 지분 매입을 통해 든든한 백기사를 자처했다. 시장 논리가 아닌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생각했고, 이를 가감없이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오뚝이 신화는 탄생했다.
무엇보다 팬택의 붕괴는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인한 '워스트 케이스'(Worst Case)로 각인될 공산이 크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에 대한 개념마저 모호해졌다. 규제할 건 규제하고 장려할 부분은 과감히 규제를 푸는 것이 글로벌 흐름이다. 기준은 국가 경쟁력이며 단기적 안목이 아닌 중장기적 관점에서 접근, 실행돼야 한다. 공정한 경쟁 토대를 만들고, 치열할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한때 모 재벌가 아들이 SNS를 통해 유행시킨 '미개하다'는 표현은 미래창조과학부에게 가장 적확하게 쓰일 수 있겠다. 국내 IT 산업의 지형을 읽고 중장기적 IT 로드맵을 관할해야 할 미래부가 국가·기업 간 협력·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선진국과는 반대로 시장구조를 바로 잡는다며 애꿎은 제조사만 고사시켰기 때문이다.
불법 보조금과 전쟁을 벌인다며 이통사 영업정지를 강제하지 않고 차라리 과징금을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투자 유치로 한 달에 15만대만 팔아도 남는 자생적 구조를 만들어낸 팬택에게 영업정지 카드가 결정타를 날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최근에 만난 모 글로벌기업의 한국법인 중역은 미래부에 빗대 '외국계 정부'라는 표현을 썼다. 자국 기업에 대해서는 막무가내식 규제카드를 남발하면서 정작 중요한 정책 입안이나 보도자료 발표 시에는 외국계 기업이 제안한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대표적인 벤처 신화이자 기술기업의 몰락을 조장한 우리 정부도 결국은 외국계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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