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요즘 농업계에서는 '한국 농업이 죽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가뜩이나 국산 농산물을 찾는 사람이 줄고 있는데 WTO 쌀 관세화에 이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연내 타결 소식까지 들리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을 열고 "연말까지 높은 수준의 포괄적 한-중 FTA를 맺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자"고 약속했다.
이번 발언은 한-중 FTA 협상이 우리 측의 중국 제조업 시장확대와 중국 측의 우리 농산물 시장개방 요구가 대립하는 중인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FTA 타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고수한 농산물 시장 무역장벽이 지금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더구나 WTO 쌀 관세화 유예와 관련해 정부가 쌀 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당장 내년부터는 값싼 중국산 농산물과 수입쌀이 물밑 듯이 들어올 전망이다.
◇경상북도 의성군에 위치한 마늘밭ⓒNews1
문제는 각종 FTA에 따른 수입 농산물의 국내 시장 잠식과 가격경쟁력 상실, 국내 소비자의 국산 농산물 소비 등이 겹치면서 한-중 FTA와 쌀 시장 개방이라는 직격탄까지 맞을 경우 국내 농업계 피해는 산더미처럼 불어난다는 점.
전국농민총연맹(전농)과 한-중 FTA 중단 농축산비상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한-중 FTA 체결 후 농업계 피해는 앞으로 10년간 약 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한-중 FTA에서는 양파와 마늘, 배추, 고추, 팥, 고구마 등 중국의 주요 수출 농산물이 우리의 주력 농산물과 겹친다는 점에서, 미국 등 다른 FTA 체결국에서 오렌지나 파인애플, 바나나 등이 수입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게 농업계 주장이다.
농민들은 쌀 시장 개방에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부는 쌀 관세화 후 수입쌀에 300% 이상의 고관세를 물려 국내 쌀과 가격 격차를 벌릴 방침이지만 농업계에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관세는 나중에 추가 협정을 통해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어서다.
국민들은 정부가 농민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 역시 이를 공언하지만 농민들은 정부의 지원대책에 대해서도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정부가 쌀소득등보전직불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은 농민 소득보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농어가목돈마련저축 관련 비과세 등 7개의 농어업 비과세 사업은 올해 종료될 예정이지만 제도를 연장하라는 농업계 주장에 정부는 눈도 끔쩍하지 않고 있어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2년 기준 농가당 부채는 2726만원으로 1992년(568만원)보다 380%나 늘었다. 국내 전체 농가로 따지면 31% 수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체결 이후 정부는 해마다 농업계 지원을 늘린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농가부채는 급증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농가의 70%가 1㏊ 미만의 농지를 일구는 영세농이고 농산물 가격은 내려가는 데 이것저것 다 해도 한해 170만원에 불과한 보조금은 농가 소득보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오히려 정부의 생색내기용"이라고 말했다.
전농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22%에 불과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니 뭐니 앞으로 추가적인 농산물 개방요구가 커질 텐데 이 땅에서는 농사짓는 게 희망이 없다고 폐업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며 "외환위기와 국제 금융위기, 세계 곡물파동에도 버텨온 우리나라 농업이 드디어 망하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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