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국가균형발전의 큰 뜻을 품고 혁신도시 사업이 추진된 지 올해로 5년째. 혁신도시는 '주거-경제-교육-문화가 조화를 이룬 작지만 강한 미래형 도시'라는 구호로 치장됐지만 실상은 초라하다. 혁신도시 사업 중 핵심인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이전기관 직원조차도 꺼릴 정도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홍보했으나 지방자치단체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검증도 안 이뤄진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혁신도시 현황을 짚어보고 혁신도시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편집자]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발전하고 지방은 지방대로 혁신을 주도해 전국이 상생의 균형발전을 추진하는데 의미가 있다" - 이희범 전 산업통상자원부(옛 산업자원부) 장관
지난 2004년 6월17일 참여정부는 행정수도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을 핵심으로 하는 제1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2004년~2008년)을 확정·발표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한국형 산업클러스터'라는 혁신도시 건설사업이 닻을 올린 순간이다.
그러나 계획수립 10년째, 사업추진 5년째를 맞는 지금, 천문학적 비용을 쏟고도 누구를 위한 혁신도시냐는 지적이 나올 판이다. 지역민에게 관심도 못 얻는 것은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환경오염 문제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다.
올해 2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서울에서 대구 혁신도시로 옮겼다. 대구 혁신도시는 대구 동구 신서동 일대 422만㎡ 부지에 들어서는 곳으로 정부는 내년까지 11개 기관을 이전하고 교육·지식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해 '브레인시티'로 조성할 방침이다.
이에 중앙신체검사소와 한국감정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이 이미 대구에 둥지를 틀었고 한국가스공사와 신용보증기금 등도 옮겨갈 예정이다.
◇대구 혁신도시 조감도(사진=공공기관지방이전단)
◇도심에서 먼 혁신도시..대다수 주민에게는 남의 일
혁신도시는 착착 만들어지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혁신도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죽하면 대구에서는 혁신도시 부지 뒤에 있는 초례산으로 나들이 가다가 대규모 건설부지를 보고서야 혁신도시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는 말이 농담처럼 나온다.
그나마 대학생들은 혁신도시에 대해 비교적 잘 알았지만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영남대 학생인 문모씨(26세)는 "혁신도시 자체는 물론 대구 혁신도시도 잘 몰랐었다"며 "대구에 온 공공기관들이 취업 때 지역대를 우대한다고 해서 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다른 곳도 다르지 않다. 강원 혁신도시(원주시 반곡동 일대)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들어서고, 정부는 이곳을 건강과 생명과학, 관광이 융합된 바이오시티로 조성할 계획이지만 평범한 원주 시민들에게는 관심 밖이다.
이는 혁신도시가 도심과 멀어 대다수 주민들이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모른다는 데 원인이 있다. 대구 혁신도시만 해도 대구 지하철 1호선 끝에 위치해 시내와는 차로 30분 넘게 걸린다. 광주·전남, 전북, 강원, 경북 혁신도시 등도 비슷한 여건.
◇지역경제 활성화 열 올린 지자체, 혁신도시 유치하니 끝?
지역민에 대한 지자체의 홍보도 부족하다. 혁신도시 중 그나마 규모가 크다는 대구와 부산 등에서도 혁시도시를 홍보하는 입간판이나 광고물을 볼 수가 없었고, 정부세종청사가 입주해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꾸며질 충남 혁신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자체 홈페이지에도 혁신도시 배너광고나 별도 메뉴를 찾을 수 없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지방이전추진단 홈페이지(
http://innocity.mltm.go.kr)가 아니라면 혁신도시에 관심을 가지려 해도 정보를 구하거나 현황을 파악할 뾰족한 수가 없다.
지자체들은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인구증가와 특성화 산업육성을 통한 지역경제가 활성화를 위해 저마다 혁신도시 유치에만 열을 올렸지, 정작 지역민에게 해당 지역으로 어떤 공공기관이 오고 무슨 산업을 육성할지 알리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
◇혁신도시 난개발로 고통받는 주민들 "어디 호소할 데 없어"
이러다 보니 혁신도시 근처의 주민들만 애를 먹는다. 혁신도시 난개발에 따른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겪지만 인구증가·경제 활성화라는 당장 이익만 신경 쓰는 지자체와 대다수 지역민의 무관심 탓에 어디에 불편함을 호소할지 방법을 못 찾고 있어서다.
혁신도시 공사가 진행되는 곳 어디서든 건물 짓고 땅을 파고 산을 깍아 발생한 먼지·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또 대형 공사차량과 트럭 등으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교통사고 위험도 크고, 하천은 흙탕물 탓에 탁류로 변질되는 일도 빈번하다.
특히 바이오관광 도시로 꾸며질 강원 혁신도시가 들어설 원주시 반곡동 일대는 치악산 국립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지만, 원주시가 혁신도시용 오피스텔과 주차장, 위락시설을 치악산 인근에 지을 계획이어서 환경오염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한국도시설계학회 관계자는 "안 쓰던 땅을 개발하는 혁신도시 사업 특성상 일대 환경파괴 지적은 이미 사업계획 수립 때부터 나왔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주택·공장 건설기준을 강화하고 불법 토지형질 변경과 건축물 설치 등을 단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남 혁신도시와 경북 혁신도시에 들어설 오피스텔·아파트 조감도(사진=라온건설, 한국토지신탁)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국토균형발전 혁신도시? 부동산 업자만 배 불린다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지방 격차해소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수천억에서 많게는 수조씩 쏟은 혁신도시 사업이지만, 지역민에게는 무관심을 받거나 난개발에 따른 우려의 대상이 되면서 결국 일부 기업과 부동산 업자만 배를 불린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몇년 사이 가장 땅값이 많이 오른 곳은 혁신도시 일대로, 올해 2월 기준 전국 지가상승률 상위 1·2위를 모두 혁신도시 지역이 차지했다.
제주 혁신도시가 들어설 제주 서귀포시 일대 지가는 지난해 같은달 보다 0.526% 올랐고, 광주·전남 혁신도시 지역인 전남 나주시의 토지 거래량은 전년 27.2% 증가했다.
사업추진 5년째를 맞는 혁신도시가 조금씩 궤도를 벗어난 모양새를 보이자 여기저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애초 2030년까지 사업기간을 계획해 아직도 수정·보완할 여지가 충분한 만큼 이제라도 혁신도시의 본래 취지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일부 혁신도시에서는 아파트 분양가 폭리현상이 일어나면서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수도권과 지방 간 상생발전의 기회를 만들겠다는 혁신도시가 투기의 기회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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