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고 일정 미루다 기습 발표..명분 잃은 쌀 관세화
2014-07-18 16:22:07 2014-07-18 16:26:19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내년 1월1일부터 쌀시장을 전면 개방키로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없는 입장 발표시점을 정했다 연기하기를 반복했고, 시장개방 선언도 기습적으로 단행하는 등 쌀 관세화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명분을 잃은 시장개방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18일 오전 정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올해말 WTO 쌀 관세화가 끝남에 따라 내년부터는 쌀에 관세를 붙여 수입하되 국내 농업계 보호를 위해 가능한 높은 관세율을 매기고 필요하면 특별긴급관세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내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관세화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측 설명, 국내 경제연구소의 의견, 국내·외 시장동향을 고려할 때 쌀 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쌀을 시장개방 대상에서 제외한 이후 20년 동안 매년 일정량의 쌀을 의무수입하는 조건으로 쌀 시장을 닫아왔다.
 
문제는 국내 쌀 소비량은 2000년대부터 매년 2%씩 급감했으나 쌀 의무수입량은 계속 늘었다는 점. 올해만 40만9000톤의 쌀을 받았는데 이는 국내 쌀 소비량의 9%로 그만큼 안 먹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이는 국내 쌀값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일부 농민단체도 쌀 관세화 유예의 부작용을 거론하며 쌀 시장개방에 찬성하고 나섰을 정도다.
 
하지만 정부는 쌀 관세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민 등의 반대여론을 의식해 일정을 마음대로 바꿔 그나마 있던 신뢰와 명분을 잃고 말았다.
 
정부는 우선 내년부터 쌀 관세화를 준비하려면 올해 6월까지는 쌀 관세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정하고 9월 중으로 WTO에 우리 방침을 통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농업계와 국제법 전문가 등은 이런 일정이 WTO 규정에도 없고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며 반발했다. 오히려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이익을 키울 수 있는 협상전략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만 WTO의 눈치를 보며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다.
 
또 통상관련 정책은 국회보고 후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시기가 촉박하다며 이를 무시하고 국회에는 단순 통보하는 형식을 취하려고 함으로써 야당 등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더구나 6월까지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했던 정부가 오히려 6월이 되어서는 합리적 대안을 더 찾겠다며 정부 입장발표 시기를 7월로 미뤄버렸다. 이미 두번의 공청회와 지역설명회 등을 통해 의견을 구할 만큼 구했으면서도 입장발표를 연기한 것.
 
18일 쌀 관세화 선언도 정부는 애초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며 이런 사정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도 그대로 보고했다. 하지만 전날인 17일 오후에 갑자기 연락을 돌려 다음날 회의를 열고 쌀 관세화를 선언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쌀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농업계는 "정부가 농민들 뒤통수를 쳤다"며 "아직 국회 비준동의 절차가 남았고 정부가 WTO와 협상한다는 9월까지는 시간이 더 있으므로 쌀 관세화 반대투쟁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제 정부 말도 못 믿겠고 탁상공론식 쌀 산업 보호대책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때 쌀을 양허제외한다는 것도 정부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약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쌀 관세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사진=뉴스토마토)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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