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남성의 사체가 도주 중인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73·
사진)인 것으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검경의 책임론 대두가 불가피하게 됐다.
더욱이 사체 발견 지점이 도주 중이던 유씨의 행적을 검경이 최초 확인한 송치재 휴게소 인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씨인지 여부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음이 드러남에 따라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남지방경찰청 순천경찰서는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의 사체에서 확인한 지문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조사 결과 유씨가 맞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검찰은 침묵했다. 경찰의 브리핑이 있은지 30분쯤 뒤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에서 "유씨의 사망이 객관적으로 확인된다면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짤막한 입장표명이 있었을 뿐이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사체 최초 발견시점은 지난달 12일로, 당시 경찰의 보고를 받은 순천지청은 경찰에 부검지휘를 했다.
통상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의 보고를 받은 검찰은 사인규명과 신원특정을 위해 부검을 지휘하는데 일차적인 방법이 지문 확인이다. 그러나 당시 사체 부패가 이미 80% 진행된 시점에서 지문감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게 순천경찰서의 설명이다.
때문에 순천경찰서에서는 사체의 DNA를 국과수에 넘겨 유전자은행에 대조해보자는 의견을 냈고 순천지청 역시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사체의 대퇴부 부분을 국과수로 보내 감식을 의뢰했다.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이때 확인절차 기간이 통상 40일 걸린다고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이 사체가 유씨일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의 통보를 통해 전날에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가까스로 사체의 지문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냉동고에 사체를 상당기간 보관해 부종을 가라앉혔기 때문이라는 것이 순천경찰서의 설명이다.
문제는 사체발견 초기부터 순천경찰서와 순천지청이 사체가 유씨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번 사건이 국력을 기울이는 만큼 엄중한 사안인데다가 유씨가 73세의 고령으로 도주 중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역시 대비했어야 했다는 점에서도 수사를 전담하고 있는 인천지검과 최종 지휘를 하고 있는 대검찰청 역시 책임을 벗기 어렵다.
순천 송치재 비밀별장에서 유씨가 도주했다고 검찰이 밝힌 시점은 지난 5월25일쯤이다. 이후 사체 발견 시점이 20여일이 지난 상황이긴 했지만 유씨의 도주루트에 순천지역은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더구나 송치재 비밀별장에서 상당기간 은거했던 점을 고려해보면 검경으로서는 유씨나 그를 돕는 구원파 신도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주요 지점에서 배제해서는 안되는 곳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20여일 후 유씨의 사체가 발견됐을 때 검경은 전혀 이 같은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당시 사체가 유씨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담당 검사나 부장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민에 의한 사체 발견 당시 주위에는 스쿠알렌이나 '꿈 같은 사랑'이라는 문구가 적힌 천가방, 고급 의류 등이 술병 등과 함께 발견됐다. '꿈 같은 사랑'은 유씨의 설교집 제목으로 구원파 수련회 때 이를 암송하는 대회까지 열려왔던 만큼 구원파 쪽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발견된 스쿠알렌의 제품 브랜드는 ASA로 한국약품에서 제조한 것이다. 한국약품은 유씨의 핵심측근으로 세모그룹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김혜경씨가 대표이다.
검경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유류품들을 살펴봤다면 유씨 도주사건은 훨씬 일찍 정리됐을 수도 있었다. 검찰 110여명과 수천명의 경찰인력, 군 병력까지 동원되는 상황에서 한달 가까이 국력이 낭비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위 검찰 관계자는 "당시에는 밀항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이고 유씨의 도피 조력자들이 전남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로 사망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없는 상황 이었다"면서도 "모든 검사들이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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