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곽보연기자] 채무상환 유예로 죽을 고비를 넘긴 팬택이 또 다시 코너에 몰렸다. 이동통신사들이 팬택 스마트폰을 거부하면서 협력사에 지급해야 할 자금줄이 막혔다.
29일 통신업계와 팬택 등에 따르면, 팬택은 최근 이통사에 13만대를 유통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 당했다. 앞서 6~7월 개통된 물량이 26만~27만대이기 때문에, 이통사에 쌓여 있는 재고를 고려해 13만대로 공급 물량을 조정하며 요청했다.
문제는 이통사가 팬택 단말기 공급을 거부하면서 팬택 협력사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이통사에 물량을 공급해야 대금을 받고, 이 대금을 협력업체에 값아야 협력업체들의 연쇄 부도를 막을 수 있다.
이번에 팬택이 이통사에 요청한 단말기 13만대는 현금가로 900억원 규모다. 팬택은 지난 11일 협력업체에 발행한 어음 180억원을 결제하지 못한 가운데, 이달 중으로 약 500억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이통사들이 13만대를 받아 주기만 하면 팬택의 550여개 협력업체가 도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팬택 입장에서는 이통사가 자사 제품을 받아 시장에 유통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내 휴대폰의 90% 이상이 이통사를 통해서 판매되고 있는 사실상의 단일 체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협력업체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팬택 협력업체 관계자는 "협력사들 중에서 1차 부도 통지를 받은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며 "이통사들이 채무 상환을 유예해 준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하늘이 도운 것 같았는데 또 다시 나락에 떨어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협력사 관계자는 "피가 마르는 것 같다"며 "채무 상환 유예할 때 물건 공급하는 것을 같이 논의했다고 들었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팬택 임직원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책으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월급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팬택 관계자는 "이통사에 제품 공급을 받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자금을 유통시켜서 협력사들의 도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팬택 임직원들은 임금을 받지 않더라도 협력사를 살리겠다는 자세"라고 말했다.
◇팬택 상암 사옥 전경.(사진=팬택)
이에 대해 이통사들은 시장 논리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017670)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시장 수요에 맞춰서 (단말기를)구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현재 팬택의 재고는 이통3사 모두 합쳐 약 50만대 수준이다. 이통사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재고도 골칫거리인데 이런 상황에서 단말기를 추가 공급받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다. 또 팬택이 제시한 채무상환 유예를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했는데, 이 안을 받아 들이고 나니 또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난번에 채무 상환 유예를 수용할 때 (단말기 공급은 )사실상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이미 얘기했다"며 "현재 재고가 쌓여있고 시장에서 팬택 제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사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도 유통망에 팬택 재고 물량이 엄청나다"며 "지금까지 판매한 것도 수요에 기반한 판매량이 아닌데 더 팔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통사들의 입장이 확고하지만 팬택은 이달 내로 단말기 공급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팬택 고위 관계자는 "채무상환 유예도 여러번 요청해서 됐다"며 "채권단 가결이 이뤄지면 좀 더 실타래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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