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자중지란 막장 치닫나..손놓은 금융당국
2014-09-02 12:31:09 2014-09-02 12:35:46
[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국민은행 전산시스템(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놓고 KB의 자중지란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전날 주전산기 교체 갈등과 관련해 입을 열었지만 임영록 KB금융(105560) 회장과의 갈등, 거취 문제 등 내부 갈등을 오히려 공론화시킨 모양새가 됐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전산 교체 문제와 관련해 두 사람의 최종 징계 결정을 열흘 이상 미루고 있어 언제까지 여론의 눈치만 볼 것이냐는 비판도 따갑다.
 
◇"내 거취는 이사회에 맡긴다"..배수진 이건호 행장
 
이건호 행장은 1일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주전산기 의사결정 과정의 논란에 대해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해 11월 국민은행 금융사고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이후 9개월만이다.
 
그간 '이사회 결정을 뒤집고 내부 갈등만 불러일으킨다' '사퇴해야한다' 등 압박이 거세지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원인을 규명하려한 자신의 정당성과 향후 거취에 대해서 조목조목 밝혔다.
 
이날 이 행장은 "은행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사퇴와 관련해 제가 이 자리를 연연할 이유가 없다. 이사회에 신임 여부를 묻고 나가라고 하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거취 문제를 대립 관계에 있는 이사회에 맡기기로 한 것은 배수의 진을 친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는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날 간담회를 통해 이 행장은 금융당국의 조치 후 KB금융측 인사를 고발하고 최근 사내 공식행사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달 22일 경기도 백련사에서 열린 KB금융 템플스테이 행사에서 임 회장을 비롯한 계열사 CEO가 1박2일 일정으로 참석했으나 이 행장은 행사 취지를 문제삼고 일정을 마무리하지 않은채 자리를 떠났다.
 
이 행장은 이에 대해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아 문제를 제기한 것은 맞다"면서도 "그날 밤에 귀가한 것은 이와는 별개로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해명했다.
 
◇은행 인사개입 논란..난처해진 임영록 KB 회장
 
이번 간담회가 내용으로나 절차적으로 봤을 때 KB경영진간  내분을 해소하기 위한 자리는 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KB금융지주에서는 국민은행장의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한시간 전까지 일정을 통보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 행장은 "기자간담회를 왜 지주와 상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지주에 대해 궁금하면 지주에 물어보면 된다. 내 입장을 설명하는데 굳이 지주와 협의를 하고 그래야 할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임 회장 측은 전산 교체 갈등과 이 행장의 간담회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전산 교체 관련 내분은 은행 이사진간의 갈등이므로 이 행장이 이사회와 협의해 잘 수습하기를 바란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하지만 전산 교체 갈등이 은행 이사진간의 문제라는 설명은 점점 옹색해져 가고 있다.
 
이 행장의 결정으로 국민은행은 지난달 26일 KB금융의 IT 임직원 2명과 국민은행 임원 1명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검찰 수사결과에서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위법 행위들이 추가로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또 간담회에서는 은행의 IT본부장 인사에 임 회장이 개입했다는 얘기도 나오면서 논란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이 행장은 "전산 담당 임원들을 고발하면서 (임 회장의 인사 개입을)고발장에 포함했다가 최종 고발장에서는 삭제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행장이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사태의 발단이 되기도 하는 임원인사 문제를 얘기했다는 것은 임 회장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경징계 뒤집을까..고민 깊은 최수현 금감원장
 
KB 내분사태가 복잡하게 돌아가면서 금융당국도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주전산기에 대한 제재 결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KB의 조직 갈등이 커지면서 최종 결론이 더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1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주전산기 교체 갈등과 관련해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경징계를 결정했으나 최종 결재자인 최수현 금감원장이 열흘 넘게 고민하고 있다.
 
당초 금감원은 두 사람에게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으며, 검사부도 중징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제재심은 최종 심의에서 결국 두 CEO에 대한 중징계를 경징계로 하향조정했다.
 
제재심의 경징계 결정을 최 원장이 뒤집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지만 제재심 결론을 뒤집는 것 자체가 큰 논란이라 최 원장으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다고 경징계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면 곧 있을 국감에서 제재의 정당성에 대해 정치권의 추궁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최 원장의 결재가 나기 전까지 이건호 행장의 재신임을 묻는 이사회는 열리지 않을 전망이다. 감독당국의 최종 결론이 있기 전에 이 행장의 거취를 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 이사회는 주전산기 교체 일정도 당국의 최종 결론 이후로 미룬 상태다.
 
최 원장의 고민이 KB의 내분을 더욱 꼬이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KB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기를 기다리면서 경징계를 뒤집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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