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들어가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배고프고 추워요.", "5분만 추위에 떨고 서 있어.", "그럼 그냥 갈래요." 노인이 문을 열었다. "프로이트가 누군데요?", "우리 편", "우리 편요?", "사랑과 성욕은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거든."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모나코>의 한 장면이다. 오늘의 작가상은 지난 1977년 민음사에서 제정돼 이문열, 한수산, 정미경 등을 배출한 상이다. 지난 10일 출간된 이 소설은 겉은 도도하지만 속은 쓸쓸한 노인의 블랙 유머를 통해 고독사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 "죽음을 놓고 어쩌자는 코미디인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터지는 웃음과 슬픈 여운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모나코>를 쓴 김기창 작가(36·사진)를 17일 서울 성북동에서 만났다.
"첫 소설이에요."
검은색 긴 팔 라운드 티셔츠에 회색 목도리를 걸치고 나타난 작가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서 결혼한 날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어, 음, 음, 2010년 말에 한 것 같아요." 낚시 장면이 나오는 케이블TV를 즐기는 소설 작가라니. 게다가 처음 쓴 소설로 등단했다.
작가는 글을 처음 쓴 사람은 아니다. 그는 대학 때 웹진 '퍼슨웹'에서 인터뷰 기사를 썼다. 그걸 모아 여러 명의 이름으로 책도 냈다. 영화 시나리오도 썼다. 2년 6개월가량 썼으나 발표된 적은 없다.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가 주간지에서 프리랜서 기자 생활도 하고 라디오 드라마 대본도 써봤다. 그러다가 지난해 겨울 "소설을 써보자"라는 오래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초고 완성에는 2개월 남짓 걸렸다. 시나리오를 쓸 때처럼 빨리 쓰고 고치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마다 쓰고 저녁에는 논술학원에 강의하러 나갔다.
"수상할 것이란 예감은 전혀 없었어요. 받아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이런 말도 했다. "혹시 희한한 작품의 수상에 대해 사회적인 반대가 있거나 오늘의 작가상의 역사에 누를 끼치진 않을까 걱정했다"고. 그렇다고 "와~" 이런 느낌은 아니었단다. 그는 당선 전화를 받고 한 시간 정도 멍하게 있었다. 그러곤 밖으로 나가 성북동 언덕을 2~3시간 걸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왔던 그는 이 소설을 쓰면서도 "지금 쓰고 있는 게 소설이 맞나"라는 의문이 있었다. 소설을 안 써봤으니까. 그럴 때는 패션 잡지 기자인 부인에게 "이게 소설이 맞냐"고 물었다. 노트북으로 소설을 쓰면서 대학 시절부터 모은 독서 노트 20여 권을 활용했다. 글을 쓰는 건 재밌었다. 그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쓸 때는 벌떡벌떡 일어나서 쓰게 되더라"고 했다.
소설이 맞는지 의문을 품으면서도 자신이 읽을 때도 피식거리며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작가는 "웃기지 않아야 할 자리에서 웃기는 사람, 웃기지 않은 주제를 웃기게 말하는 사람이 부러웠다"며 "웃기지 않은 어두운 주제에서 웃음을 주는 요소가 있는 건 실제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웃기지만 묵직한 소설을 쓴 이유는 이런 이유뿐만은 아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2~3년 전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떠올랐어요."
작가는 고독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기주의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혈연·지연·학연 등 자신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에만 애정을 쏟으면서, 그 울타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관심을 끊고 공감하지 못하며 연민 또한 느끼지 않는 문제가 그것이다. 개인이 주체로서 오롯이 선 뒤 사회 공동체를 구성해야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개인화가 올바르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시점에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가 쓴 <죽음이란 무엇인가>,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의 <자살론>도 읽었다.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보통의 경우 곁에 사람이 있으나, 고독사는 그렇지 않다. 작가는 "그건 굉장히 슬픈 일이고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라서 써보자는 생각이었다"며 "한국 사회는 일본을 닮아간다고 하는데 개인이 원자화·파편화하는 속도는 한국이 더 빠르니 고독사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설은 많이 안 읽은 편입니다."
이번 작품의 구성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과거에 추리소설과 살인을 다룬 하드보일드 소설, 세계문학전집을 주로 읽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쓸 때 등장인물의 개성이 강하고 플롯이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나코>는 사건보다는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장소와 계절도 고려했다. 노인과 죽음에 어울리며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을 찾았다. 주변이 한적하고 빈부가 공존하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어야 했다. 산책할 길도 있어야 했다. 노인이 수영을 자주하는 건 작가가 수영장에 다니는 것과 무관치 않지만, 모나코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모나코는 따뜻한 느낌이 있는 나라이고, 기대수명이 90세에 달해 노인에게는 이상향처럼 느껴지므로 소설과 대조되는 곳"이라며 "모나코란 곳을 잘은 모르지만, 모르는 것이 매력 있다. 소설 주인공들의 이름도 우리나라 이름이 아니라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했다"고 했다.
대개 떠올리는 노인 이미지를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런 뒤 소설 속 인물을 최대한 단순화했다. 그렇게 해야 소설 속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모나코>의 노인은 그래서 냉소적인 면이 두드러지고 자신의 삶과 사랑, 죽음만 생각하는 인물이 됐다. 그는 "몸만 늙었고, 정신은 늙지 않은 노인을 그리고 싶었다"며 "내면이 복잡한 사람을 그리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으로 인물을 단순화했다"고 설명했다.
"노인은 소설 중간부에서 죽는 걸로 했다가 바꿨어요."
소설 끝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은 처음에는 중간부에 죽을 운명이었다. 노인의 죽음 이후 주변 인물의 삶을 보여주면서 고독사가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싶어서였다. 이 생각은 "노인을 더 보여줘야겠다"는 판단에 바꿨다. 이 정도의 변형이 있었을 뿐 <모나코>의 플롯은 꼬여 있지 않다. 그는 "독창적인 플롯을 좋아해서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를 즐겨 읽었다"면서도 "하지만 모나코는 플롯을 독창적으로 만들지 못했고, '쭉' 쓴 것"이라고 했다.
"최근 관심사는 야성의 회복입니다."
작가는 야성을 잃어버린 남자가 그것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는 작가가 최근 후지와라 신야와 공원국 작가의 여행기, 신정일의 <신택리지> 등을 최근 읽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책에서 '자유'를 느꼈다. 공간이 움직일 때 사고도 움직였다. 작가도 무엇인가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다만, 아내보다는 오래 살고 싶단다.
"저 없이 있는 게 슬프잖아요."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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