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LNG 운반선(사진=현대상선)
[뉴스토마토 최승근·양지윤기자] 미국발 셰일가스·오일 후폭풍으로 국내외 에너지 업계와 유관 산업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량 증대로 세계 최대 가스 생산국이자 세계 2위의 원유 생산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에너지 업계의 지형이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무엇보다 셰일가스 혁명을 가장 뼈져리게 체감하고 있는 분야는 석유 생산업체들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그간 틀어쥐고 있던 독점공급 체제가 균열될 조짐을 보이자 셰일가스 견제에 전방위적으로 나섰다. 석유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전통자원과 비전통 자원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되면서 국제유가 폭락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것.
셰일가스 열풍은 유관산업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산업 분야다. 셰일가스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LNG(액화천연가스)·LPG(액화석유가스) 운반선의 수요는 급증했지만, 대규모 해양 프로젝트가 줄줄이 지연되면서 해양 분야 수주 급감으로 이어졌다. 이는 해당 분야에 강점을 보여온 국내 조선업의 몰락을 낳았다.
◇정유업계, 셰일가스 직격탄..중동, 미 견제 탓에 국제유가 급락
셰일가스 혁명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은 곳은 정유업계다. 정유사들은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 침체와 이에 따른 정제마진 하락을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상반기와 전혀 다른 차원의 국면이 전개됐다.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제품에 대한 수출가격 인하와 생산량 유지라는 초강수를 두며 유가 급락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산 셰일가스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도입 원유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의 경우 지난 9월 배럴당 평균 96.64달러에서 지난 19일 55.70달러로 석달 새 42%나 곤두박칠쳤다.
이는 당초 정유업계 예상과 정면 배치되는 결과다. 업계는 10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두바이유가 배럴당 8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전 세계 생산량의 3%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면서 유가하락이 진정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전망도 극히 어둡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제품 수요 부진과 공급과잉에도 아랑곳 않고, 출혈을 감내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저유가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생산원가가 70달러 내외인 셰일가스는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유 4사, 재고평가손실 불가피..영업적자 1조원 발생 확실시
문제는 셰일가스 견제에 따른 불똥이 국내 정유사에 고스란히 튀고 있다는 점이다. 원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정유사들은 당장 재고평가손실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원유 도입과 석유제품 판매 시기의 시차가 평균 한 달 정도 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비축해 둔 원유에서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SK이노베이션의 경우 9월말 대비 배럴당 35달러 가량 유가가 급락하면서 4000억원 이상의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다른 정유사들도 사정이 엇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096770), GS칼텍스,
S-Oil(010950), 현대오일뱅크 등 4사는 정제마진 약세에다, 하반기부터 국제유가 급락의 충격파를 떠안게 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정유사업에서만 1조원의 적자 발생이 확실시되고 있다.
공급 시장이 예측불허 상태에 놓이게 되자 정유 업체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가장 발빠르게 나선 곳은 GS칼텍스다. 미국 정부가 지난 6월 콘덴세이트 수출을 39년 만에 허용하자 GS칼텍스는 지난 9월 품질 테스트 차원에서 40만 배럴을 수입했다.
다른 정유사들도 미국산 콘덴세이트를 비롯한 중동 외 지역으로 원유 도입선을 다각화하며 조금이라도 더 싼 기름을 찾아 나서고 있다. 아울러 각종 비용을 축소하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지만, 유가하락분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석화업계, 국제유가 폭락에 울상..원료구매 유예가 '복병'
석유화학 업계 역시 셰일가스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원료가 되는 나프타는 원재료인 국제유가의 급락으로 속절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나프타 가격은 지난 12일 기준 톤당 513달러를 기록하며 1월(톤당 평균가격 950달러) 대비 무려 46%나 주저앉았다.
특히 국제유가 하락세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석유화학 업체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전방업체들이 추가적인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원료 구매를 줄이거나 유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 가뜩이나 중국의 수요 정체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급락까지 겹치는 등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향후 전망도 불투명할 것으로 보고 긴장의 고삐를 놓지 못하고 있다. 오는 2016년부터 미국에서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분해시설(ECC)이 본격 가동되면 나프타분해시설(NCC)에서 나오는 에틸렌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셰일가스 기반의 에틸렌 원가는 NCC 대비 60%대에 불과해 경쟁력 자체를 논할 수 없다. 여기에 ECC에서 생산되는 기초유분 가운데 에틸렌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0%나 달해 범용 합성수지 제품의 고전이 예상된다. 다만 ECC는 BTX(벤젠·톨루엔·자일렌)과 프로필렌 등 다른 기초유분을 거의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생산설비와 제품에 따라 업체간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스업계, '지금이 기회'..셰일가스 투자 활발
반면 가스업계는 셰일가스 열풍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전 세계 천연가스 소비량의 75%를 차지하는 큰 손임에도 '아시아 프리미엄'을 부담해야 하는 이른바 '호갱(호구와 고객을 합친 말로,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고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공급선이 제한된 탓에 중동에서 부르는 게 값으로 적용됐다. 때문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업계 안팎에서는 셰일 혁명을 지렛대 삼아 시장가격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셰일가스 도입 및 활용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SK E&S는 지난 9월 말 북미 현지에 설립한 손자회사인 듀블레인에너지를 통해 미국 콘티넨탈리소스와 약 3억6000만달러에 미국 현지 셰일가스전 지분 49.9%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SK E&S는 3년 간의 시추 기간을 거쳐 오는 2017년부터 생산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LPG 수입업체인 SK가스는 PDH 사업에 뛰어들었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LPG가격이 하향 안정화된다고 보고, LPG를 원료로 프로필렌 제조에 나선 것. E1은 올해부터 미국 가스업체 엔터프라이즈에서 구매한 셰일가스를 북미 인접 국가에 직접 판매하고 있으며, 지난 10월에는 미국 내 셰일가스 운송·서비스 업체인 카디널가스서비스의 지분 34%를 확보하며 관련 사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조선사, 셰일혁명 '나비효과'..수주 부진으로 이어져
변화는 유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업의 경우 신규수주 부진으로 이어졌다. 셰일가스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LNG·LPG운반선의 수요는 급증했지만, 대규모 해양프로젝트가 줄줄이 지연되면서 해양 분야 수주는 급감했다.
특히 드릴십 등 국내 조선소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시추 시장이 극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올해 국내 조선 빅3의 전체 수주액도 급감했다. 셰일가스 붐으로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굳이 비용이 많이 드는 심해 시추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오일메이저들이 해양프로젝트를 연기하면서 관련 설비의 발주가 감소했고, 이는 곧 조선업의 수주 부진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올 3분기 누적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34억5000만달러로, 지난해 159억1000만달러에 비해 78% 급감했다.
셰일가스 붐으로 드릴십 등 시추 시장은 연평균 85억달러에서 올해 드릴십 2기 14억달러로 83.5% 크게 감소했다. 해양설비는 올해 91억달러로 지난해 140억달러 대비 3분의2 수준으로 줄었고, 해양분야 전체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상 감소했다. 반면 셰일가스 생산량이 늘면서 이를 운송할 초대형 가스선 수요는 급증했다.
LNG선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대우조선해양(042660)의 경우 22일 현재까지 총 28척의 LNG선을 수주했다. 지난 2004년 20척 이후 10년 만에 역대 최고 기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LNG선 덕분에 조선3사 중 유일하게 올해 수주 목표치를 채울 수 있게 됐다.
현재 셰일가스 붐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올해 5개의 셰일가스 수출 프로젝트에 대해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오는 2017년부터 3800만톤의 LNG 수출이 진행될 예정이며 LNG선 발주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셰일가스 후폭풍은 비단 조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형 조선사들이 실적 부진에 몸살을 앓으면서 원가절감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이는 곧 철강사들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간산업이자 전통산업인 이른바 굴뚝산업의 연쇄 붕괴다.
◇해운업, 저유가에 함박웃음..비용절감 기대
수주가 감소하는 조선업과 달리 해운업과 항공업은 저유가 시대를 맞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해운업은 대표적인 유가 민감 업종으로 전체 비용 중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할 정도로 유가 변동이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서는 선박 연료유 매입단가가 1% 하락할 경우 약 72억원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셰일가스 붐으로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한진해운(117930)은 지난 2분기 7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3분기에도 흑자기조를 유지했다. 적자 노선 정리와 노후선 매각 등 구조조정 노력과 더불어 유가 하락도 적자 탈출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장기간 저유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운임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가 하락세가 길어지면 선박들이 고속운항을 하게 되고 이는 선복량 증가로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운항속도를 높일 경우 기존에 비해 노선에 투입되는 선박이 줄게 되고, 잉여 선박들이 다른 노선에 투입되면서 경쟁 심화로 인한 운임 하락 요인이 발생하는 구조다. 선복량 증가는 해운업 침체와도 맞닿아 있어 업계의 관심이 큰 사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유가 하락으로 인한 연비 절감 효과가 더 큰 상황"이라며 "향후 유가가 톤당 200~300달러 수준까지 떨어진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업황이 침체기인 상황에서는 무리하게 속도 경쟁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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