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주요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전담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이중적 행태가 계속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총수가 밑바닥에서부터 자수성가해 일가를 이룬 그룹과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그룹을 대하는 온도 차가 심하다는 지적이 있다. 자율협약 등을 통해 채권단의 개입이 시작되면 경영진 교체, 사업 및 조직개편 등 구조조정이 뒤따르지만 일부 기업들에게는 가혹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게 몇몇 기업들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STX그룹과 동부그룹이다. 두 곳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갈등이 깊었던 기업들이기도 하다.
STX그룹을 세웠던 강덕수 전 회장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로 꼽힌다. 강 전 회장의 경우 한때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뒤를 잇는 기업가로 꼽혔다. 강 전 회장은 지난 2013년 STX그룹 구조조정 당시 기업 부실의 책임을 물어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을 박탈당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워크아웃을 신청한 금호산업의 대주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사정이 달랐다. 산업은행은 박 회장에게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하고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사실상 박 회장의 우군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STX그룹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한 상태였고,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강 전 회장의 경영권은 보장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강 전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STX그룹 임직원과 노조, 지역 경제단체들까지 강 전 회장의 유임을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 전 회장도 사태 수습 뒤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거절당했다. 강 전 회장을 끌어내린 채권단은 산업은행 출신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를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다. 이후 강 전 회장은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최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동부그룹도 STX그룹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동부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동부제철의 경우 STX그룹과 마찬가지로 대주주 100대 1의 무상감자를 통해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갔고, 경영진 교체도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시무식 신년사에서 “산업은행에 적극 협조했으며, 구조조정의 성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온갖 불리한 상황에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땀 흘려 일한 성과들이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금호산업도 과거 구조조정 초기에 동부 및 STX와 마찬가지로 100대 1 감자 실행을 단행해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을 상실했고 우선매수권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차이가 없다"면서 "그러나 기존 경영진이 감자 후에 자발적으로 수천억원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통분담 및 경영정상화 의지를 보임에 따라 우선매수권을 부여 받은 것”이라고 반론했다.
채권단 설명이 미치지 못하는 사례들도 있다. 지난 2013년 말 자구안 계획을 발표했던 한진그룹과 현대그룹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큰 갈등 없이 자구안을 이행하고 있다. 채권단은 이들 두 그룹의 경우 동부나 STX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데다, 선제적으로 자구노력을 기울여 채권단의 개입이 시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자구안 시행에 대한 압박은 있었다.
하지만 한진그룹의 경우 10대 그룹 중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한진그룹의 부채비율은 무려 452.4%로, 이는 두 번째로 부채비율이 높은 한화그룹(144.8%)의 3배를 웃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진그룹은 지난 2009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재무 개선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원활한 구조조정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재무 여건이 나빠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그룹은 올해 7년째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재무 관리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이를 두고 재계의 시선은 편치 않다. 기업 총수의 경영권이 대물림되는 그룹의 경우 그렇지 않은 곳보다 금융 및 정치권과의 교류가 많아 관계가 잘 정착돼 있는 반면 자수성가한 기업의 경우 여전히 시선이 냉대하다는 지적이다.
STX그룹에 몸 담았던 한 고위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덕수 회장이 상의 등 경제단체 활동을 통해 재계와 금융권과의 관계를 잘 맺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벽은 여전했다. 모친이 옛날 식모생활을 한 데다, 평사원 출신이 그룹 회장이 됐다고 자기들하고 어울리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는 편견이었다. 그렇게 냉대 속에 STX는 무너졌다. 강 회장이 다시 그때 상황이 된다면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면 했지, 절대 산업은행과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김준기 회장은 지금도 전경련 등 재계와 발을 끊고 지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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