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그리스 제1야당인 시리자가 긴축 종료 공약을 전면에 앞세워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경제 성장과 민생 안정을 이뤄내고 잃어버린 존엄성을 되찾겠다는 시리자의 공약이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이 그리스와의 부채 탕감 협상을 일축하고 있는 데다 그리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된 터라 약속했던 공약을 다 지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긴축 앞세운 시리자, 1위 정당으로 등극
로이터통신은 25일(현지시간) 그리스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 급진좌파인 시리자가 36~39%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주도한 신민당은 23~27%에 그쳐 2위에 머물렀다. 그 뒤를 중도 성향의 신생정당인 포타미(6.4~8.0%)와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당 황금새벽당(6.4~8.0%)이 뒤따랐다.
이대로 순위가 매겨진다면 시리자는 득표율 1위 정당으로 올라서고 자동으로 50석을 얻게 된다. 헌법상 제1당은 50석을 보너스로 받는다. 나머지 250석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시리자가 의회 과반을 확보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나, 과반이 아니어도 군소 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권을 잡을 것으로 확실시 된다.
시리자의 파노스 스쿠르레티스 대변인은 출구조사 이후 성명을 내고 "우리가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 분명하다"며 "시리자의 승리는 그리스의 사회적 존엄과 정의를 되찾아주고 유럽의 고통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승리를 예감한 일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사진)도 지지자들 앞에서 "트로이카의 시대는 끝이났다"며 "잃어버린 존엄성을 되찾아주겠다"고 외쳤다.
사마라스 총리가 주도한 긴축에 싫증을 느낀 국민들이 대안 정당으로 시리자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그리스는 지난 2010년 이들 트로이카로부터 2400억유로(293조원)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연금과 임금을 삭감하고 공공부문을 상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긴축정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5년간 진행된 긴축 정책으로 정부 지출이 줄어드는 동안 그리스 민생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전체 가계의 무려 25%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국민 4명 중 한 명이 실업자가 됐다.
긴축을 했음에도 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그리스의 국가 부채는 현재 3200억유로로 국내총생산(GDP)의 175%에 이른다. 이는 일본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그리스 국민 한 명당 3만 유로(3700만 원)의 빚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허리띠를 조였음에도 빚 부담만 커지고 경제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자 시리자는 점점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실제로 시리자는 국가 부도 위기가 심화될 무렵인 지난 2012년 무렵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리자 3대 공약..부채 탕감·임금 인상 ·연금 확대
시리자의 공약은 크게 부채탕감, 임금 인상, 연금 확대로 압축된다.
그중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부채탕감 공약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부채 부담이 너무 과하다는 불만을 품어 왔다.
이를 눈치챈 시리자는 일찌감치 국제채권단인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 트로이카 채권단과 부채의 절반을 탕감하는 협상을 벌이겠다고 선포했다.
부채 탕감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채무 상환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시리자는 6개월 정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지길 바라고 있다. 집권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 성장의 초석을 다지려면 그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이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의 승리 연설에 환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그 사이 시리자는 침체된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 온 힘을 집중할 계획이다.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성장의 과실을 맛볼수 있는 순환고리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연봉이 1만2000유로 이하면 면세 혜택을 주고 중소기업에는 밀린 세금을 줄여주는 등 조세 부담을 덜어줄 방침이다.
빈곤층과 중소기업을 전폭적으로 후원한다는 안도 눈길을 끈다. 시리자는 빈곤층 30만 가구에 무료 전기와 무상 음식 쿠폰을 제공하고 노령 연금 수급자들을 상대로 한 의료 서비스를 강화할 예정이다. 중소기업들에는 세금 감면 혜택을 줄 계획이다.
또 시리자는 한 달 기준 최저임금을 현행 580유로(72만원)에서 751유로(94만원)로 늘리고 민간·공공·사회 분야에서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한마디로 시리자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돈을 이끼기 보다는 쓰는 정부로 컨셉을 잡은 셈이다.
비효율적인 정부 구조를 고치기 위해 장관 수를 현재 18명에서 10명으로 줄이는 구조개혁 안도 마련했다.
◇시라자, 자금 절실..트로이카와의 부채 탕감 협상 '불투명'
시리자가 이런 성장·안정 공약을 이루어 내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은행들의 줄도산을 막는 데도 자금 수혈이 절실하다. 그러나 트로이카는 시리자의 요구대로 채무를 탕감해 주거나 상환 기간을 연기해 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체결된 부채 협상을 번복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부담인 데다 다른 부채 위기국들도 그리스를 따라 줄줄이 부채를 탕감해 달라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볼프강 보스바흐 독일기독교민주동맹(CDU) 내무담당 의원은 "우리는 절대로 부채 협정을 파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채무 재협상은 다른 위기국에 잘못된 신호를 줘 같은 협상을 기대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로존 경제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의 반대가 거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는 지난 2010년 재정 위기를 기점으로 긴축을 통한 재정 건전성 강화를 부르짖고 있다. 메르켈은 "부채 탕감은 없다"며 시리자의 주장을 총선 전부터 일축해왔다.
유로존 2위 경제국인 프랑스 또한 시리자가 정권을 잡는다 해도 국제 채권단과 맺은 채무 협정은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 양대 경제국이 부채 탕감에 강하게 반대하자 시리자는 종전의 '그렉시트(Grexit)' 레토릭을 멈추고 협력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렉시트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뜻하는 합성어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는 이날 "양쪽 모두에 이득이 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의 동료들과 함께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다음 달로 예정된 그리스 협상 만기일이 도래하기 전까지 시리자와 트로이카가 '치킨게임'을 벌일 것이란 전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시리자가 독일 정부를 비롯한 트로이카 채권단과 힘겨운 부채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그리스 경제가 수년간 어려운 시기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달 초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그리스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1%포인트 낮춘 1.5%로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오는 26~27이 양일간 브뤼셀에서 그리스 금융지원에 관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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