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광화문 인근에서 A건물의 1층을 임차해서 쓰고 있는 B기업은 최근 계약 만료에 따라 사무실을 정리하기로 했다. 보증금 24억원에 월임대료 5000만원을 내고 30년이나 사무실을 운영해 왔지만 경영악화에 지점을 하나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임대인인 C기업은 보증금 반환을 거부하며 B기업을 당황케 했다. 30년 동안 사람들의 이동으로 닳은 사무실 바닥을 원상복구하지 않을 경우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30년동안 낸 월세 외 보증금 24억원에 대한 이자로 나가는 돈이 하루에 30만원에 달했다. 법적으로 임차인의 원상회복 의무가 명시돼 있어 B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강하게 밀어 붙이지 못했다.
B기업은 C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건물에도 임차를 하고 있는 지점이 더 있다. 임대료 인상 등 생각치 못한 피해가 번질까봐 B기업은 울며겨자먹기로 원상회복을 약속했다.
애매모호한 임차인의 원상회복 의무가 을(乙)을 힘들게 하는 일이 빈번하지만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대인은 이를 앞세워 계약만료시 부정당한 갑(甲)질을 일삼고 있다.
오랜 기간 논란거리 였지만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보완장치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민법 548조에 따르면 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해 원상회복 의무가 있다. 615조에는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해야 한다고 돼 있다.
536조 1항에는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임차사용자는 임대인의 재산에 손상을 줬다면 이를 원상복구해 반환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범위가 광범위해 법정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B기업 경우 30년이나 사용한 건물의 감가상각과 보증금 24억원의 이자로 대신할 수 있다고 입장이지만 법적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증금을 쥐고 있는 임대인은 원상회복을 내세워 보증금 반환을 거부하는 사례는 빈번히 발생해 왔다.
임대인의 원상회복 요구에 따라 3000만원을 들여 공사 후 명도했지만 30여만원 상당의 원상회복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일부 임대인들은 원상회복을 위한 공사 업체를 지정하기도 해 임차인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추상적인 규정에 따라 다양한 판결이 내려져 있지만 법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 상가 임차인 입장에서는 통상 보증금을 조기에 반환받기 위해 임대인의 요구에 따른다. 원상회복 비용이 크지 않을 경우 소송비용이 더 커질 수 있어 대응하는데 어려움도 있다.
남영우 나사렛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종료가 안됐는데 임차인이 나간다거나 새로운 임차인을 찾기 힘든데 세입자가 나간다고 하면 임대인이 원상회복 의무를 내세워 몽니를 부리기도 한다"면서 "원상복구라는 개념이 명문화돼 있지 않아 마치 새건물 수준으로 복구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대형 임차인은 법무팀이 있어 대항할 수 있지만 수천만원 규모의 소규모임차인은 법적 대응을 하기도 어렵고 대항할 판례도 모르고 있어 임대인의 요구를 따를 수 밖에 없어 이들을 도와 줄 수 있는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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