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현행 공용수용제도가 과도하게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과 미국 등 선진국이 개발의 효율 보다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앞세워 제도를 개선해 온 것과 상반된다.
4일 KDI가 '개발우선주의 패러다임을 넘어'를 주제로 연 국제컨퍼런스에서 현행 한국의 공용수용제도가 국가의 수용권을 남용토록 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용수용제도란 공공의 목적을 위해 법률로써 개인의 재산권을 강제적으로 취득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대표적인 것이 토지수용제도인데, 이는 특정 개발사업이 공익사업으로 인정되면 토지 소유자가 원치 않더라도 토지의 소유권을 강제적으로 뺏어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골프장 건설 등 공익 목적이 적은 사업에까지 수용권이 남용돼 왔다.
김준경 KDI 원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한국은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지만 그 이면에는 개발효율적인 공용수용권의 남용, 그리고 이에 따른 사유재산권의 보호가 잘 이뤄지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축사를 통해 "공용수용의 국민 재산권 침해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고급 골프장과 같이 공익성이 낮은 사업에 대해서까지도 민간개발자에게 수용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위헌으로 판결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호준 KDI 연구위원은 "강제수용에 앞서 사업이 공익에 부합하고, 지나친 재산권 침해가 없는지를 검증하는 '사업인정절차'가 토지보상법에 규정돼 있으나, 실제 이를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매년 강제수용을 수반하는 사업이 약 2만 건에 이르는데, 사업인정절차를 거치는 사업은 20건 내외"라고 말했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는 이를 두고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갈등조정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토지수용위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간 개최한 총 66회의 회의에서 무려 총 1만2571건이 처리됐다"며 "이는 회의 당 평균 190건 이상으로 형식적인 검토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는 "민간사업자에게 강제수용권을 부여하는 범위가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넓다"며 "관련 법률이 총 49개에 이를만큼 민간사업자에 대한 강제수용권 부여가 광범위하다"고 분석했다.
국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의 공용수용제도에 문제점이 많다며 제도의 개선을 주장한 것. 이에 반해 독일과 미국 등에서는 국가의 수용권 남용으로부터 국민이 재산권을 지킬 수 있도록 법제가 개선돼 왔다.
한스-베른트 쉐퍼 독일 부체리우스 로스쿨 교수는 "독일에서는 엄격한 공익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수용을 수반한 특정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법률로 규정되지 못한 경우, 위헌판결을 내려 수용처분을 무효화한다"고 밝혔다.
일야 소민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도 "미국에서는 2005년 이후 공용수용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해 지역경제발전, 세수 증대 등을 이유로 추진하는 사업에 강제수용권을 주지 못하도록 법 개정이 됐다"고 말했다.
안네 판 아켄 스위스 생갈렌대 교수는 "EU에서는 각국의 법제와 더불어 유럽인권협약과 EU 인권헌장 등 EU 차원의 다양한 안전장치를 통해 다층적으로 재산권을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개발우선주의를 넘어 신장된 국민 권리인식에 부합하는 공용수용제도의 본격적인 재검토와 개정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KDI는 "헌재는 수차례에 걸쳐 민간수용 자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지난해 말 특정 민간수용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라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며 "향후 헌재의 총체적 판단이 주목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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