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침내 매달 600억유로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고삐풀린 유동성이 금융시장으로 유입되자 유로존 국채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유로화 가치도 곤두박질 쳤다.
전문가들은 유로존 국채 금리와 유로화 가치가 당분간 낮은 수준을 이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로존 국채금리 하락 행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ECB가 지난 1월에 약속한 대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로존 국채 600억유로어치를 매입했다고 전했다.
오는 2016년 9월까지 진행되는 양적완화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ECB가 국채 매입에 돌입하자 각국 국채 금리는 약속이나 한 듯 사상 최저치 수준로 떨어졌다.
안전자산으로 평가 받는 독일 10년 만기 국채는 이날 0.08%포인트 하락해 0.32%를 기록했다. 현재 7년 만기 이내의 독일 국채 금리는 모두 마이너스(-) 대로 떨어진 상태다.
◇최근 6개월 간 독일 10년 만기 국채금리 추이 (자료=CNBC)
부채 위기를 경험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 같은 국가들도 양적완화 덕을 톡톡히 봤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각각 1.22%, 1.29%로 내려갔다.
ECB 양적완화 효과는 바다 건너 미국 국채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매입할 유로존 국채가 부족해지면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로 시선을 돌릴 것이란 기대감 덕분이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5%포인트 내린 2.193%를 기록했다.
마크 다우딩 블루베이자산운용 채권등급평가 부문 대표는 "ECB 양적완화가 몇몇 국채 가격을 띄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다만, 앞으로 2~3주간은 국채매입 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지를 놓고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국채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막대한 규모의 유로화가 시장에 풀리면서 고수익·고위험 자산에 접근하려는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지난 2월 마지막 주 동안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국 국채 11억달러어치를 사들였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최고 규모다. 3월 첫주에도 7억달러의 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돼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로화 약세 심화..美 기준금리 인상도 유로 약세 부추겨
풀린 유동성은 국채시장 뿐 아니라 외환시장에도 흘러들어 유로화 약세를 부추겼다.
유로화는 이날 장중 한때 1.0823달러를 기록하며 11년래 최저치로 내려 앉았다.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ECB 양적완화와 더불어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인 0.05%이며 예금금리는 마이너스(-)0.20%다.
◇유로·달러 환율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가늠하고 있는 것 또한 유로화 약세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조치로 시장의 달러 유동성이 줄어들면 자연히 달러 강세·유로 약세 구도가 굳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예상을 확인시켜 주듯 지난 6일 미국 고용지표가 호전되면서 기준금리 조기 인상론이 부상하자 유로·달러 환율은 1.0842달러로 지난 2003년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조나단 웹 제퍼리 외환 전략 담당은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완화의 조합은 외환시장의 새로운 세계"라며 "유로가치 하락은 장기간 이어진 것인데, 이러한 흐름을 막을 요인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로화 약세·국채금리 하락 당분간 '지속'
전문가들은 유로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츠비시도쿄UFJ은행은 유로화가 올해 1.05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은행들도 '패러티(parity)' 환율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유로화 약세를 점쳤다.
패러티는 서로 다른 두개의 가치가 동일해지는 현상을 말하는 데, 환율로 따지만 유로화와 달러의 가치가 1대1로 같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모건스탠리와 씨티그룹도 패러티가 내년에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로존 국채금리 또한 저조한 수준을 맴돌 것으로 보인다.
패트릭 바브 BNP파리바 유럽채권 부문 대표는 "ECB는 유로존 국채의 25%를 사들일 계획"이라며 "유로존 5년 만기 국채 대부분은 향후 3년 동안 제로 수준이나 그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CB 국채매입이 지금처럼 쭉 시행된다면 한동안 위험투자 선호도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은행 BNP파리바의 조사에 따르면 이달 첫 주 동안에만 고수익 유로존 국채에 8억5100만유로가 유입됐다. 이는 한 주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다만, ECB가 현 수준의 양적완화를 계속 시행하지 않아 유로화 약세와 국채금리 하락 전망을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영국은행 바클레이즈는 ECB가 내년까지 매달 600억유로의 자산 매입을 이어갈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마리오 드라기는 ECB 총재는 지난주 예금금리인 -0.2%보다 낮은 금리를 나타내는 국채는 매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선영 아이비토마토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